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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프레임코웍스 Sep 29. 2019

최초의 여성 러너가 바꾼 세상

RULE BREAKER 15. 캐서린 스위처 


현대 사회 속 달리는 여성의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요즘 스포츠 브랜드의 화법에 녹아있는 필수 요소는 달리는 여성 이미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이키. 박나래와 엠버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도시를 달린다. 뉴발란스도 있다. 오늘 뉴발란스의 글로벌 러닝 이벤트 '런온'이 진행됐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런온을 알리는 얼굴은 김연아. 총 1만 3천 명이 한강변 코스를 달리는 이벤트라니.



나이키에 박나래와 엠버가 있다면, 뉴발란스에는 김연아가 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캐서린 스위처가 있다.



달리기 말고 다른 스포츠도 있는데, 도시가 아닌 다른 장소들도 있는데, 실제로는 여성이 아닌 남성들도 많이 참가하는데... 왜 요즘 브랜드들은 도심 속에서 여성을 강조한 달리기를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이야기하는 것일까? 



달리기는 인간이 맨 몸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다. 특별한 기술 없이 끈기 만으로 발을 굴러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는 개인이 가진 삶의 투지를 보여주는 게 아주 적합하다. 특히 달리기에는 사회적 편견이나 억압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이탈하는 여성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코드가 존재한다. 이 정서적 코드는 1967년, 캐서린 스위처가 만들었다. 세계적인 마라톤 무대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최초의 여성 러너, 캐서린 스위처



캐서린 스위처. 그녀는 1967년 세계에서 최초로 공식적인 무대에서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마친 여성이다. 여기서 유추하여 알 수 있겠지만, 그 전에는 여성이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하나의 금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800m 달리기 까지는 가능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한 것으로 막아두었다.)



그 이유는 지금 들어보면 참 황당하다. 여성은 긴 거리를 달릴 만큼 건강하지 않고, 다리가 굵어지거나 가슴에 털이 날 수 있으며, 달리는 도중 자궁이 빠질 수 있다는 등의 이유(또는 편견)였다. 손기정 선수가 세계 마라톤 무대인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 1936년이다. 그 어렵던 시절, 우리나라 선수가 해외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서도 31년이 지나서야 달리기의 문이 양성에게 열린 것이다.



캐서린 스위처가 여성 달리기의 금단을 깬 건 우연한 계기였다. 그는 여성운동가도 아니었고, 특별히 마라톤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1966년에 로베르타 깁이라는 여성이 보스턴 마라톤 출발선 근처 덤불에 숨어있다가 도둑 출전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듬해 귀걸이를 하고 립스틱을 바른 채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하기로 한다. KV Switzer라는 중성적 이름으로. (훗날 참가 저의가 의심되자 그녀는 논문에 쓰던 서명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등록은 남자로 오인하여 그럭저럭 이뤄졌고, 261번이라는 번호를 받지만 마라톤이 시작되자 곧바로 그녀의 의지는 가로막힌다. 6km 구간을 지날 때쯤에 그녀가 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조직위원장이 마라톤 현장에 뛰어들어 "번호표를 내놓아라. 레이스에서 꺼져라. (Get the hell out of my race and give me those numbers!)"며 제지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참가한 코치와 남자 친구가 감독관을 저지하고, 죽어라 뛴 캐서린 스위처는 피투성이가 된 발로 마라톤 결승선을 찍어내고야 만다.



캐서린 스위처가 저지당하는 순간. 중절모를 쓴 조직위원장과 그녀를 앞으로 보내주기 위해 노력하는 코치와 남자 친구. 역사가 바뀌던 순간이다.



하지만 그녀의 완주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 사진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많은 사람들이 스위처를 두둔하자 협회는 별 수 없이 여론에 밀려 그녀의 기록을 공식 인정한다. 훗날 그녀의 번호 '261'은 여성 해방운동의 상징이 되고, 위의 사진은 미국의 사진잡지 LIFE가 선정한 '세상을 바꾼 100장의 사진' 중 하나로 선정된다. 





지나 보면 별 의미 없는 세상의 룰들



캐서린 스위처는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지정하지 않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이 역사적인 행동을 설명한다. 지금은 '아니 저렇게 말도 안 되는 룰이 어딨어?'싶지만, 여성은 숙녀로 규정되지 않으며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는 그녀의 피투성이가 된 발이 필요할 정도였다.



세상의 룰들은 시간이 지나 보면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흑인과 백인이 화장실을 따로 써야 했던 룰이나, 이른 나이에 결혼하지 못하면 사회적 패배자 거나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는 사회의 룰들이 그렇다. (극단적인 경우로는 분만실에서 흡연이 가능했던 것도 지금 보면 일종의 어이없는 허가 규칙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룰은 존재한다. 비키니를 입고 레저를 즐기는 여성과 히잡 없이는 바깥출입이 안 되는 여성이 동시대를 산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누군가는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즐기지만, 다른 누군가는 히잡 없이 외출할 수 없다.


캐서린 스위처는 이 사회가 이래라저래라 정해주는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별한 영향력이나 원대한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닌,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억압에서 오는 부당함을 짚고 넘어가기로 했던 것일 뿐. 그래서 말하고 싶다. 평범한 어느 누구라도 소신대로 행동하면, 그녀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돌아보면 한 때 우리를 옥죄던 관념, 관습, 사회적 규범 같은 룰들은 별 의미 없는 것이 대부분일 뿐이다.





* 사진출처 - 구글

* 뉴프레임코웍스 - https://newframe.imweb.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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