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 BREAKER 16. 염따
주말 내내 실시간 검색창에는 '염따 후드티'가 자꾸 나타났다. 염따는 가수다. 장르는 힙합, 무명은 10년 넘게, 흥한 건 요즘, 비결은 유튜브. 유튜브를 통해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계기가 돼서, 꾸준히 해오던 그의 음악은 큰 인기를 얻었고, 요즘 가장 잘 나가는 힙합 아티스트 중 하나다. 이전 룰브레이커 유튜브 편(한 시대의 거의 모든 룰을 바꿔버린 빨간 버튼)에도 잠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런 염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냐면, 그가 판매하는 후드티가 대박이 난 거다. 첫날 4억, 둘째 날 12억, 마지막 날 21억 누적 매출을 달성했다.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마케터라면 염따의 성공이 우연이나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이유를 알아봐야 한다. 소비자는 언제나 정직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열광하는 무언가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염따의 후드티에는 '안티프레질 스토리텔링'이 있다. (룰브레이커에 이름을 올렸기에)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존의 스토리텔링 룰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어떻게 3일 만에 21억의 매출을 기록한 후드티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염따 후드티'라는 놀라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안티프래질을 이해해야 한다. 이 개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인한 금융위기를 예견한 월스트리트의 금융전문가 '나심 니콜라스 탈래브'가 만든 것이다. 그의 저서 '안티프래질'에 따르면 안티프래질이란 '충격에 취약한'이라는 뜻의 프래질(fragile)의 반대 개념으로, '충격에 점점 더 강해지는 성질'을 의미한다.
이렇게 거창한 안티프래질은 경제용어 같지만, 사실은 지금 우리가 사는 모든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이다. 그리고 안티프래질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의 주인공이 바로 염따다. 그는 단순히 안티프래질 개념의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안티프래질을 전략적으로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이다. 아주 쉽게, 아주 힙하게-
후드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염따는 학창 시절엔 따돌림을 당했고, 음악을 같이 하던 친구들이 어마어마하게 성공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실제 그의 노래 ZOOM 가사에 '난 혼자였지 항상, 창문도 없는 방, 책상 위엔 건반 하나였지만, 밀어붙였지 난 꿈을 더'라는 부분이 등장한다) 가장 성공한 찌질이 또는 주접 쟁이를 자청하는 그가 이미 승승장구해서 잘 나가는 친구, 더콰이엇의 벤틀리를 받아버린 것이다. 하필 차값이 3억을 훌쩍 넘는 비싼 그 차. 그 수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판매한 것이 후드티다.
염따는 자신의 초라한 과거를 공감의 발판으로 삼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철저하게 소외되고, 남의 성공에 축하보다 패배감이 먼저 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는 잘 통하는 스토리텔링 소재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슈퍼스타K식의) 스토리텔링 공식에 가깝다.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룰, 안티프래질한 방식에는 '우연'과 '의외성'이 반드시 포함된다. 의도되거나 꾸민 것이 아닌, 일어난 해프닝을 그대로 노출하고 이를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수 억의 고급차 수리비를 티셔츠를 팔아 갚겠다는 비장함과 참담함. (가내수공업으로 티셔츠를 보내야 하기에) 주문이 많을수록 늘어나는 수입보다는 택배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러니. 밀려드는 문의전화에 숨이 막힐 것 같다면서도 일일이 응대해주는 자상함 (또는 아마도 관심에 대한 고마움).
어처구니없게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에 소비자는 열광하고, 그 과정을 함께 즐기는 것이 안티프래질한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염따가 티셔츠가 많이 팔린 것에 대해서 무한히 감사하는 영상을 찍었다면 어떨까. 벤틀리 수리비를 갚을 수 있도록 티셔츠를 사달라고 이리저리 열심히 공지를 띄웠다면 어떨까. 아마 오늘 같은 이색적인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2019년 위기관리 방식으로 가장 많이 대조된 것이 임블리와 무신사다. 임블리의 곰팡이 호박즙에 대한 무성의 대응과 비교되는 무신사의 부적절한 패러디 광고에 대한 '신속하고 솔직한 사과'가 포인트가 아니다. 중요한 건 대중의 반응이다. 무신사는 이번 위기를 맞음으로 이해서 훨씬 더 멋있고 좋아하고 싶은 브랜드 파워를 만들어냈다.
안티프래질 시대에는 위기가 비즈니스 모멘텀이 된다. 사고를 치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에 담긴 스토리가 엄청난 밈(meme)을, 바이럴을, 패러디를, 확산을 낳는다. 염따는 (일부러 그럴리는 없었겠지만) 더콰이엇의 벤틀리를 받아버린 사고를 아주 영리하게 자신의 비즈니스 모멘텀으로 활용했다. 이제 더 이상 성공적인 모멘텀은 이벤트, 프로모션, 신제품 출시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제 마케터들은 위기의 형태를 갖춘 비즈니스 모멘텀을 만들어야 할 시대를 맞이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얼마나 멋지고 괜찮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사고부터 쳐야 하는 시대에는 기억해라. '안티프래질 스토리텔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