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 BREAKER 18. 스트리트푸드파이터
먹방 아니면 여행. 요즘 프로듀서들은 이 두 주제 없이는 콘텐츠를 못 만드는 병이라도 걸린 것일까. (아니면 다른 것을 만들고 싶은데, 시청률 안전빵이라는 이유로 고통 어린 강요를 받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PD 님들 미안해요.)
두 콘텐츠의 아버지 격인 나영석 PD가 1박 2일로 시작해 삼시세끼와 꽃보다 청춘이라는 홈런을 치고, 칸 라이언즈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가진 것이 2017년이다.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났지만, TV 속 돌림노래는 여전하다. 먹으러 다니고, 놀러 다니고. 부지런히 정보는 흘러나오는데, 알맹이는 프로그램마다 대동소이하여 어째 별 감흥이 없는 것이 시청자 마음이다.
근데 작년 여름, 뭔가 좀 다른 게 등장했다. 먹방과 여행의 식상한 조합인데, 아시아의 에미상이라 불리는 Asian Television Awards에서 2018년 베스트 인포테인먼트 부문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19년에 시즌2로 돌아왔다. 시즌1의 성공 때문인지 기자간담회도 열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열심히 운영한다. 바로 tvN의 박희연 PD가 백종원 사업가를 섭외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스트리트푸드파이터'다.
스트리트푸드파이터는 예능의 탈을 쓴 교양 프로그램이다. 먹거리나 놀거리에 출연자가 달성해야 하는 미션을 조합한 여타 예능과 다르다. 오히려 EBS의 '세계 테마 기행'이나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 '한국인의 밥상'에 더 가까운 포맷을 지니고 있다. 그나마도 내용을 이끌어가는 인터뷰나 내레이션도 없다. 극적으로 촬영한 음식과 만드는 과정, 1인 출연자인 백종원의 약간의 설명이 전부다.
대신 스트리트푸드파이터는 포르노의 공식을 차용한다. 시청자의 시각에 충실해서 콘텐츠 속에 담긴 내용을 극대화하여 대리 경험하도록 갖가지 장치를 포진시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면이 터져나갈 듯 넘치는 익스트림 클로즈업. 매 화면이 음식의 질감과 촉감, 즉 감각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극대화되어있다. 가장 최근 방영된 시칠리아 편에서는 스핀치오네 피자를 보여주며, 빵의 단면을 화면 가득 채워 구성했다. 그리스어 중 스펀지를 뜻하는 말에서 나온 이름임을 설명하며 아주 천천히 그리고 탐미적인 시선으로 포크로 빵을 지그시 눌러 내린다.
슬로모션과 ASMR, BGM도 여타의 음식을 다루는 콘텐츠와의 차별점이다. 다이너마이트가 연속적인 굉음을 내며 폭발하듯, 익스트림 클로즈업 뒤에 슬로모션과 ASMR이 촘촘히 배치되어있다. 군더더기 없는 엄청난 크기의 타이포그래피는 덤이다. 시청자가 동공을 확장시키고, 귀를 기울이게 만들며, 감각에 푹 젖을 수 있도록 감각 기폭제 역할을 제대로 한다. 3D 장치 없이 TV를 볼뿐인데, 음식을 만지고 씹는 듯한 감각의 포만을 느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인 박희연 PD가 미디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카메라는 최소화하고 다큐멘터리 같은 방식을 차용해서 찍는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을 배제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와 눈높이 촬영을 고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고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극사실주의 시각으로 음식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맞고, 다큐멘터리는 극적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틀리다. 다큐멘터리보다는 교양 넘치는 푸드포르노 장르로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확한 정보 전달과 사실주의보다는 극적 연출과 감각의 폭발, 그것이 스트리트푸드파이터 그 자체다.
스트리트푸드파이터의 신선한 등장은 시청률 2.2%(다른 기록으로는 2.9%)라는 성과를 남겼다. 평일 밤 11시 편성에, 8부작으로 끝나며, 본 적 없는 모험천만한 포맷이 거둔 기록이다. 대중의 반응은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이유 있는 어떤 진실 그 자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는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동시간대 방영된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가 2% 초반 성적을 유지 중이다.)
그러나 돌아온 시즌2는 시즌1처럼 시청률이 점진적으로 오르지 않고, 오히려 하락 중이다. 시즌2는 다양한 지역으로 떠났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라고 한다. 스트리트푸드파이터는 결코 낯선 지역으로 우리를 초대했기 때문에 콘텐츠의 룰 브레이커로 등극한 것이 아님을 떠올려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감각은 강한 자극에 쉽게 반응하고, 빨리 피로해지는 법이다.
스트리트푸드파이터는 떠올리기 쉽지 않은 장르의 융합으로 고품격 푸드포르노의 시대를 열었다. 휴대폰 시청이 주를 이루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콘텐츠의 장점도 가지고 있다. 얼핏 성공한 페이스북 광고의 후킹 포인트들이 보이기도 한다. 새로운 방점을 찍는 것에 성공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노우카메라앱과 공동으로 내놓은 푸드 필터도, 화면 속 등장한 음식과 맛집을 정리한 블로그 콘텐츠도 아닌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아닐까. 대중들은 단순히 더 강한 자극보다, 더 사실적인 자극을 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