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 BREAKER 19. 오픈캐스트
지난 9월 말,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위크 참석을 위해 많은 연예인들이 공항에 등장하고 그들의 패션이 사진기사로 터져 나왔다. 이때 낯선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으니, 모델이자 슈퍼 인플루언서인 아이린(@ireneisgood)의 팔이었다.
패션위크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 아닐까 싶은 이 장치는 팔로워 165만 6천 명에 이르는 아이린의 인스타그램에 패션위크 내내 등장되었다. #깁스패션 또는 #breakanarmbutmakeitfashion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이것은 놀랍게도 패션위크를 위해 특수 제작된 그 무엇도 아닌 의료용 캐스트였다. 골절, 인대 파열 등으로 신체부위를 고정해야 할 때 필요한 그것, 우리에게는 독일어 깁스 또는 이에 대한 일본어 표현인 기브스로 익숙한 그것 말이다.
인류 역사 상 골절 등으로 신체를 고정하는데 필요했던 치료는 고대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아라비아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리넨, 대나무, 왁스, 전분, 달걀흰자 등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그러다 1750년대에 이르러 유럽 의사들에 의해 군인 치료 중 고정력이 있는 붕대가 고안됐고, 석고를 사용한 형태를 갖춘 것은 1850년대 중반을 넘어서다.
바꾸어 말하자면, 석고붕대 형태의 치료는 170년 간 그 단단함이 깨진 적이 없었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물을 묻혀 굳히는 특성 덕에 2주~4주에 이르는 치료 과정 중에 씻을 수 없고, 공기도 통하지 않아 악취를 견뎌야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장기 치료로 이어지면 욕창이나 짓무름은 감수해야만 했다. 피부가 연약한 어린아이, 아토피나 무좀처럼 가려움을 수반하는 피부질환이 있는 경우라면 괴로움은 극으로 치닫는다. 이 찝찝함과 가려움을 견디기 위해 액상 파스, 멘소래담 로션, 나무젓가락 등이 동원되기도 했다.
모두가 당연히 받아들였던 이 고통에 의문을 던진 사람이 있으니, 오픈캐스트를 개발한 오픈엠의 박종칠 대표다. 다리 골절로 깁스 치료를 받던 중 견딜 수 없는 불편과 갑갑함에 이를 해결해보기로 한 것. 화학을 전공하고, 화학소재 분야에서 일한 덕분에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쉽지 않았다. 갑갑하지 않게 뚫려있는 구조와 물에 닿아도 되는 소재에서 답을 찾기 위해 어부가 쓰는 그물과 망사스타킹에 매달렸다고 한다.
오픈캐스트는 그렇게 꼬박 연구에 8년, 임상에 2년, 20억 가량의 연구비를 쏟으며 매달린 결과다. 샤워와 수영은 물론 반신욕도 문제없고, 바람도 잘 통한다. 열에 반응하는 신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30분 만에 캐스트 처치를 끝낼 수 있으며, 톱으로 자르지 않고 조인트 부분을 풀어서 해체할 수 있다. 보관해두었다가 다시 사용도 가능하다. 선별 보험 수가 적용으로 본인부담금은 80% 선이며, 실손보험 처리의 길이 열려 환자 접근성도 높다.
오픈캐스트는 석고붕대를 기반으로 한 캐스트 치료의 한계를 보란 듯이 깨부수었다. 부서진 뼈는 단단히 동여매고, 꼼짝없이 가둬야 한다는 발상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마치 무하마드 알리의 말처럼 말이다. 알리는 불가능은 사실이 아닌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 일축했다.
오픈캐스트의 시작 뒤에는 오랜 시간과 연구비뿐만 아니라, '안될 거야'라는 말을 견디는 과정이 있었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시장의 많은 전문가들은 오픈캐스트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석고붕대 방식에 비해 비싼 비용이 원인이었다. 그럴 때마다 오픈캐스트는 오로지 환자의 불편함에만 집중했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니까. 처음부터 성공이 확정된 혁신이란 없는 법이니까.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하나씩 바뀌어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