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 BREAKER 20. GS25 돈벌라면
골목 하나에 편의점 셋, 다시 그 골목을 돌면 편의점 둘. 눈 닿는 모든 시야에서 편의점 찾기가 너무 쉬워진 세상. 하지만 편의점이라고 다 같을까? 미니스톱은 KFC처럼 치킨을 튀겨 팔다가 이제는 쥐포도 튀겨 팔고, 시즌 별 한정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판다. (지금은 벨지안 초콜릿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판매 중이다.) CU는 대게딱지장과 간장새우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마장면으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과시했다.
GS25는 좀 다르다. 편리함과 재미로 치열한 간편식 시장 외 편의점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자꾸 나온다. 최근 GS25의 가장 엄청난 상품은 '광고판'이다. PB상품으로 팔던 컵라면 '인생라면'의 용기 자체를 광고판으로 팔아버린 것. 광고 내용은 한 술 더 뜬다. 금융상품이라니!
'돈벌라면'이라 이름 붙인 이 획기적인 금융상품 광고판. 라면을 조리하려면, '국내주식 건더기스프', '해외주식 분말스프', '펀드 별첨스프'도 챙겨 넣어야 한다. 이 재미있는 생각에는 당연히 밈(MEME)을 겨냥, 용기에는 '이렇게 올리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해시태그도 친절히 안내되어있다. (영화 극한직업 속 류승룡 배우처럼 읽어주세요.) 지금까지 이런 광고판은 없었다. 이것은 라면인가 광고판인가- 싶게 말이다.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물건을 사는 시대. 무너지기 시작한 건 대형마트와 H&B스토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겨냥한 판매망은 독이 되었다. 구경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득 물건을 사들고 나오던 재미는 사라졌다. 마트는 빠른 배송을, H&B스토어는 체험형 공간으로의 변신을 내세우며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 되고자 했으나, 결과는 아직 '실험 중' 상태.
마트와 H&B스토어가 공간 존재 이유의 변신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찾는 동안, 편의점은 행보가 조금 달랐다. 편의점은 편의점 그대로 남았다. 가까운 데서 간단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프라인망. 이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코드가 맞는 것은 그냥 싹 다 흡수시키는 중이다. 그냥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말고, 바쁘고 시간 없는 사람들이 들러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간단하고 편리한 건 다 있는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 보면, 편의점은 아주 매력적인 플랫폼이다. 편의점에는 서비스의 전문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실용적이고 빠른 편의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이, 24시간 밀집되어 있는 오프라인 플랫폼이다. 심지어 판매 기록으로 누적된 전산화된 빅데이터가 있으며, 전국 단위의 유통망과 일정 수준 이상 표준화된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제 편의점은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편의점은 GS25의 돈벌라면처럼 PB상품 패키지를 이용해서 광고판을 팔 수 있고, CU-킥고잉 사례처럼 공유 경제 서비스의 오프라인 거점이 될 수도 있다. 편의점에 현재 검토 중인 코인 노래방이 생겨나면, 틱톡 같은 동영상 플랫폼과 결합할 수도 있다. 틴더 같은 데이팅 앱들의 오프라인 미팅 이벤트 장소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1020에게 인기인 필름 카메라의 셀프 디지털 사진 인화 서비스를 제공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쯤 되면 감이 오지 않는가. 21세기형 인간 군상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만물상이 바로 편의점이다.
아마존은 온라인을 완전히 평정하고, 오프라인으로 뻗어 나오고 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인공지능형 매장 '아마존고'와 평점을 포함한 빅데이터를 이용한 '아마존포스타' 등이 그것이다. 아마존의 오프라인 진출은 단지 판매 공간을 갖기 위함이 아니다.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속에 오직 아마존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목적이다.
'무슨 아마존이 GS25 마케팅을 배워'라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지만, 마케터라면 이 룰브레이킹 포인트를 기억해야 한다.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이 우주에서 사용할 잉크 찌꺼기가 나오지 않는 볼펜 개발에 열을 올릴 때, 소련은 연필을 선택하는 것으로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버렸다는 과장된 우화를 떠올려보자. (참고1: [DBR 경영 지혜]120만 달러 들여 ‘우주 볼펜’ 개발? 연필 쓰면 되지! | 참고2:위키백과-우주펜)
아마존이 오늘날 아마존고, 아마존포스타를 내놓기 전을 떠올려보자. 약 5년간 미국 전역에 87개의 팝업스토어를 내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아마존. (원래는 100개 점포까지 내려고 했으나 경영진 스스로 87개에서 멈추겠다고 선언했다.)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며 예산 짠돌이라는 조롱까지 받는 아마존은 전략 실패가 아니라고 했지만, 이 실험적인 투자가 조금 더 효율적이었다면 아마 제프 베조스도 좋아했을 것이다.
단순한 상점이 아닌 특별한 경험과 삶이 녹아있는 오프라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이 범주 안에서는 GS25가 아마존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근거리에서 편리하게 해주는 서비스가 모여있는 장소'라는 정체성으로 라면이 담긴 광고 상품을 파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게 시작이라 더 기대된다. 편의점이 풀어내는 오프라인 플랫폼 비즈니스의 혁신. 이마트도, 올리브영도, 아니 아마존에서도 못 보는 무언가가 반드시 더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