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 BREAKER 23. 포디즘
* 이 글에는 영화 '포드V페라리'의 결말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미리 알기 원하지 않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요즘 재밌다고 소문난 영화 '포드V페라리'. 이 영화는 집념 끝에 포드라는 타이틀이 레이싱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후, 승자인 포드에 감명 받고, 대단한 자동차 회사라며 박수를 보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극 중 포드는 타겟 라이벌로 삼았던 페라리의 방식과 페라리적 사고관을 지닌 사람을 돈으로 소유하으로 결국 승리하기 때문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집념,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과 자존심, 비록 큰 노력을 들여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차이가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매달리는 장인정신, 소수만이 넘볼 수 있는 레이싱이라는 세계에 대한 정복욕. 그 가운데 있는 순수한 꿈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는 전부 영화 구도 속에서 포드에 대치되는 페라리적 가치다.
반면 영화 속 포드는 이윤추구에 충실한 기업으로 그려진다. 미적 감각은 없고, 서류나 만지며 관료주의적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 자동차에 대한 순수한 열망보다 승리 자체에 집착하는 포드의 모습. 이는 장인정신을 지닌 페라리와의 대결구도를 그리며, 영화의 극적 재미를 더해간다.
그럼 이제 영화에서 빠져나와보자. 포드는 결코 시시하지 않다. 포드는 단순한 자동차 회사가 아니며, 그 발자취 속에는 인류사를 완전히 바꿔버린 굵직한 혁명이 존재한다. 그런 혁명을 지탱하는 것이 포드적 사고, '포디즘'이다. 기존의 관념을 뒤엎고, 새로운 현실을 개척한, 그래서 무시당하기도 하는 포디즘. 영화는 페라리적 철학의 드라마를 보여주지만, 현실 속 포디즘은 분명 위대한 철학이다.
포디즘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자동차'로 대표되는 포디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포드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모두가 카레이서일 필요는 없다'라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과거 카레이싱 문화를 이해한다면 '모두를 위한 자동차'가 얼마나 황당한 소리인지 감이 올 것이다. 카레이싱은 유럽 상류층 극소수가 향유하던 고급 스포츠가 그 기원이다. 1800년대 산업혁명 이후 대다수가 노동자로 일하던 시대에, 차를 소유하고 스포츠로 즐기며 이를 위한 장소와 장비 및 인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부자'라는 의미. 지금으로 치면, 취미로 비행기를 소유하고 몰고 다니기 위해 비행기를 맞춤 제작하고 활주로, 비행기고, 스태프에 들어가는 비용을 댈 수 있는 사람일테다.
포드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다. '자동차가 왜 특수층을 위한 전유물이어야 하느냐?'- 포드는 자동차의 속성을 사치품에서 생필품으로 바꿔 생각했다. 무조건 싸고 실용적일 것. 여기에는 느려 터진 마차를 탔기 때문에 모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헨리 포드의 개인사가 동기라는 비화도 있고, 기계를 좋아하던 디트로이트 출신의 가난한 소년 헨리 포드가 엔진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포드는 자동차에 '실용적 가치'라는 프레임을 실현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수공예품처럼 만들어지는 자동차는 전문 정비가 필요했고, 부품은 그때마다 치수를 재고 손으로 깎아 만들어 갈아야 했는데 이 방식도 갈아치워 버렸다. 제품을 표준화시키고, 부분품을 단순화시키고, 작업은 전문화(생산 분업)시켰다. 원가 절감을 위해 오로지 까만색 자동차만 설계도대로 만들었고,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했다.
포디즘은 그런 것이다. 경쟁을 위주로 일하지 말 것, 미래에 대한 공포와 과거에 대한 존경을 버릴 것(계속 좋은 방법을 찾아 혁신할 것), 봉사가 이윤에 선행할 것, 값싸게 제조하여 값싸게 팔 것. 포드는 특수층을 위한 예술을 고집하지 않는다. 포드 앞에서는 오뜨 꾸뛰르 무대를 위한 실크 드레스보다는 리바이스의 청바지를, 에르메스의 버킨백보다는 캔버스 천으로 섹션을 나눠 만든 가볍고 튼튼한 가든백이 더 가치 있다.
포드는 현재도 포디즘을 계속 계승 중이다. (물 샐 틈 없는 이동통신망을 가진 우리나라에는 공감되지 않겠지만) 포드는 2009년에 포드 자동차를 타는 한 누구나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포드 싱크 와이파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타나 보급되던 쯤이며, 사물인터넷 개념이 대중화되기 전이라는 배경을 감안하면 자동차 자체가 와이파이 존이 된다는 생각은 획기적이다.
최근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포드는 자율주행 기술에서 단연 돋보인다. '운전을 할 수 없는 사람까지 탈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매진해온 것. 2019년 발표된 미국의 한 산업보고서에 따르면, 포드는 GM, 구글(웨이모)과 나란히 가장 강력한 자율주행 기술의 리더로 꼽혔다. 현재 포드는 워싱턴 디씨에서는 성공적으로 일반 도로 내 자율주행차 공식 테스트를 마쳤으며, 미국 내 다른 주에서도 같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또한 2021년 첫 자율주행 자동차 생산을 목표로 생산 라인을 준비 중이다.
포드는 실용의 이름이다. 다이슨보다 샤오미에 가깝다. 어쩌면 이케아 같기도 하다. 최고를 고집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넓혀가는 방식을 가장 잘하는 회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보여주는 포드는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뭐, 최고가 아닌들 어떠한가. 최고는 하나 뿐이지만, 대부분은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 참고
Ralpf Lauren's Incredible Car Collection (MY MODERN MET, MAY 2001)
달리는 차 안에서 무선 인터넷 즐기는 시대 오나? (중앙일보 2009.12.22)
Model T, Automobile (Enclopedia Britannica)
자율주행차 리더에 구글-GM-포드, 현대차는 도요타-BMW 등과 추격 (동아사이언스, 201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