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프레임마이라이프 시즌2. 인생은 에잇볼
그러지 말고,
점 잘 보는 곳 좀 알려줘봐 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시간들. 2020년은 12월 한 달만을 남겨둔 채, 차갑고 건조한 얼굴을 하고 있다. 불안정하기로는 올해 같은 때가 없어봐서일까. 단체 카톡방마다 사주카페니 타로카페니 운세를 점칠 수 있는 곳을 묻는 대화가 한 번쯤은 등장하는 요즘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 나 혼자 산다에서 헨리도 고민이 많다며 점을 보러 갔지 참.
나도 한 때는 점을 보곤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땐, 회사 선배들과 새해를 맞는 세레모니로 관상이니 사주니 유명하다는 집 투어를 바쁘게 돌았다. 영등포니 압구정이니, 새로 신내림을 받아 그렇게 용할 수 없다는 신점까지. 그럴 땐 들떠서 '미신을 믿는 게 아니야. 올해 잘 풀릴 거라 좋은 이야기 들으면 기분 좋고, 나쁜 이야기 해주면 조심하면 되지 뭐' 같은 합리화도 꼭꼭 붙였더랬다.
(개인적인 생각의 변화로) 내가 더 이상 점을 보지 않는다고 답해도, '그러지 말고 점 잘 보는 곳 좀 알려줘봐 봐'라고 묻는 사람들. 유명한 점집이란 점집은 장르별로 다 투어 해본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따로 있다.
만약 당신의 인생을
스포일러 할 수 있다면
만약 당신의 인생을 스포일러 할 수 있다면, 그 스포일러를 들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나는 듣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 이 세상에 결과를 알고 보니 더 재밌는 영화와 책은 한 편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한번 곱씹고 싶어 N차 관람을 하는 영화와 두고두고 읽을 때마다 교훈이 달라서 재차 읽는 책은 제외다!)
스포일러는 영어 단어 SPOIL의 뜻 '망치다'에 그 행위를 하는 사람 접미사 ER을 붙여, 의미 그대로 '망쳐버리는 사람'이다. 상황을 가정해보자. 스릴러의 긴장이 좔좔 흐르는 전대미문의 미스터리 추리극을 보고 있는데, 쫄깃한 추격전 끝에 용의자와 마주한 주인공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저 사람 범인 아냐, 아까 나온 옆집 사람이 범인인데 답답하네'라고 누가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면? 깊은 빡침은 기본이요, 영화티켓 값 환불은 물론 못 들은 귀도 사고 싶어 진다. (자매품 #안본눈삽니다 도 있다)
스포일러 당한 인생의 단점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양방에서 다 튀어나온다. (반대로 장점은 놀라우리만큼 없다.) 기쁜 결실을 맺는 일이 일어났을 땐 '아, 이렇게 된다 그랬으니까 일어난 일이구나'하고 자신의 노력의 가치가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미리 알아버린 비극적인 일은 '이 일이 그 일인가? 아닌가?' 늘 노심초사하며 매사를 경계심으로 대하는 소극적인 인생으로 당신을 유도할 것이다.
(*스포일러주의! 영화 관상에 이런 사건이 나온다. 목이 잘려 죽을 상이란 말을 들은 뒤로 평생을 경계하고 긴장 속에 살지만, 결국 죽은 뒤 목이 잘리는 어떤 인물!)
인생이란
수영을 하고 있다 믿었지만,
파도에 휩쓸려 다니는 시간들
나는 점집을 묻는 사람들에게 영화 스트레인저댄픽션을 추천하곤 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삶이 사실은 집필 중인 어떤 소설임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소설의 엔딩을 바꾸고 싶어서, 그 소설가를 애타게 찾아다니다 결국 연락이 닿으며 전개된다. 맞다. 영화 속 소설가는 운명을 설계하는 신, 주인공은 운명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에 대한 재미있는 메타포가 있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소설가로 등장하는) 신은 신대로 운명을 설계하며 고뇌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사람대로 그 운명 엿본 후 고뇌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그래서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기에, 그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사람들에게 운명을 엿보면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 보라고 추천해주는 것이다.
만약 운명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면, 거스를 수 없는 일은 내가 알아도 일어나고 몰라도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을 망치는 스포일러, '점'을 내돈내산까지 하며 보러 다니지 않는다. 대신 신이 나를 위해서 준비한 이 운명이 때로는 힘들고 거지 같아도, 나름대로 신의 고뇌가 듬뿍 담긴 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설계한 최선의 운명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편을 택했다.
장기하 씨의 말마따나, 인생이란 수영을 하고 있다 믿었지만 사실은 파도에 휩쓸려 다니는 시간들일지도 모른다. 신이 나를 알래스카 빙하수에 내려놓았는지, 몰디브 앞바다에 내려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는 이미 태어났으니 이미 파도 속인 셈이다. (알래스카에서 둥둥 떠서 몰디브까지 가게 되는 운명이 설계되어있기를 바랄 뿐) 그렇다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건 하나다. 모험심으로 파도를 탈 것인가, 공포에 질려 표류하며 파도를 탈 것인가? 당신이 고를 차례다.
뉴프레임마이라이프
그래서 제목도 '뉴프레임마이라이프 -인생은 에잇볼'이라고 지었습니다. 숫자8은 많은 문화 속에서 과거를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이유로 뉴프레임코웍스의 시그니처 넘버이기도 합니다.) 당구게임에서도 새 게임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이번 게임을 종료하는 에잇볼을 쳐야 하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