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명함 너머로 보는 것

ROUND 6. 그것은 사람인가요, 어떤 능력이나 기능인가요

by 뉴프레임코웍스

회사를 그만두면, 자기소개가 어려워진다



"그럼 지금 하시는 일은 어떻게 되세요?"



금요일 저녁 7시. 지난 안부 묻자며 어쩌다 갑자기 생긴 자리였다. 지인들이 모인 것까진 좋았는데, 주변에서 퇴근했다는 지인의 지인의 지인들까지 합석하며 갑자기 자리가 커졌다.



사회생활 깨나 했다는 낯선 사람들끼리 모이면, 명함부터 나누고 통성명을 한다. 나도 늘 그래 왔다. 그땐 그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나는 명함이 없었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이메일은 몇 개씩이나 있는데도 명함이 없다. 소속이 없고, 간판이 없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하지. 머릿속이 괜히 복잡해졌다.



"아, 왜 그래~ 이 분들 알아두면 좋을 분들이야. 명함 하나 드려. 이젠 강대표잖아. 강 대표!"

"대표는 무슨요. 근데 정말 명함이 없어서 그래요. 명함 아직 인쇄소에서 안 나왔어요."

"아, 그래? 거참 아쉽네. 형님, 이 분은 강승희 씨라고 정말 재밌고 똑똑한 사람이에요."



인쇄 중이라는 거짓말로 둘러대고야, 명함 돌리기에서 자유로워졌다. 어쩌면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아직 확신이 없는지도 모른다. 대표라니 부끄럽고, 장사라고 하자니 맞지가 않고, 프리랜서라니 명함까지 있는 게 맞나 싶고 말이다. '지금 나는 뭘까?', 나를 소개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하는 맘에 계속 불편한 맘으로 자리를 지켰다.




명함, 사회생활의 신분증이라는 씁쓸함



'성명, 주소, 직업, 신분 따위를 적은 네모난 종이쪽.

흔히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신상을 알리기 위하여 건네준다.'



명함의 사전적 정의다. 명함은 사무를 위한 개인 연락처와 정보의 축소판인 동시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의 신상을 증명하는 간이 신분증인 것이다. 무게는 가벼워도, 명함은 한 사람 인생의 축소판일 때가 있어 실은 꽤 무겁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이름도 있고, 전화번호도 있고, 이메일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명함에 담겨야 할 내용이 다 있는데 딱 하나가 없었다. 그것은 소속 또는 회사. 나는 예전의 나 그대로인데, 소속이 불분명한 그 날 나는 왠지 꽤 주눅이 들었다. '우리 그냥 안부나 물으러 아는 사람들끼리 보는 거 아니었나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뱉을 수가 없었다.



괜히 신원불명의 못 미더운 사람으로 내가 보일 것만 같아서. 괜히 그렇게 주눅이 들어서. 난생처음 느껴보는 찌질함을 허덕였다. 내가 우스웠다. 그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건, 잘난 회사 이름이 박혀있던 회사의 이름이었다는 걸 내가 제일 몰랐다는 사실에 마음이 수치로 가득 찼다.




내가 제일 비뚤어졌었구나



내가 국민학교를 입학할 때만 해도, '가정환경조사'라는 게 있었다. 집은 몇 평인지, 주거 형태는 자가/전세/월세 중 무엇인지, 자동차는 보유하고 있는지, 부모님의 직업과 학력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어떤 회사들은 이 질문을 아직도 구직자에게 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블라인드 서류 전형과 부모님의 연세, 최종학력을 묻는 서류 전형이 동시대에 존재한다니.



"건승! 건배!"



건배사가 외쳐지는 동안 나는 내가 구시대적인 가정환경조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주고받은 수많은 명함으로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가늠하곤 했었기 때문이다. 회사명, 직급으로 사회적 위치와 생활수준을 가늠했고, 학력과 살아온 환경을 짐작했었다.



명함이 없는 내가 지금 여기서 같이 술잔을 부딪히는 동안, 누군가는 나를 보며 '저 사람, 과연 어떤 사람일까?'라고, 아니 '저 사람, 어떤 인생을 살아온 사람일까?'라며 궁금해하겠지 싶었다. 아니다, 좀 더 계산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저 사람, 지금 이 자리에서 같이 어울리기에 수준 맞는 사람일까?'라고.



이런 게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거였다. 내가 비뚤어진 마음으로 그동안 사람을 대해왔으니, 그 방식대로라면 지금의 나는 형편없는 가치를 가진 사람일 테니까. 괴로웠다. 그동안 똑똑한 척, 세련되고 멋있는 척은 다 해왔는데 나는 껍데기뿐인 사람이었다. 후지고 후진 과거의 나를 알아볼수록 패배감이 커졌다.




+) ROUND6. 명함 속에 갇힌 나



명함 속의 나로 살아가는 일은 녹록지 않습니다. 책임에는 절제가 따르는데, 절제는 이따금 때로는 자주 나답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실제의 나라면 지금 원하지 않는 것도 참고,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것. 그런 행동이 늘 만족스럽기는 어렵겠지요.



이번 라운드는 저의 패배입니다. 하지만 패배 속에서 더 많이 배웠습니다. 누군가의 수입, 직급, 능력이 그 사람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높은 직급의 사람에게 신세 진 것도 없는데 애써 친절했던 나를 인정했습니다.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할 땐 사람을 알려고 노력했는데, 어느 순간에는 능력을 알고자 하는 제가 되어있더군요. 누가 저를 그렇게 대하면 물론 싫을 겁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법, 가끔 잊고 있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속한 곳이 회사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부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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