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열 받게 하는 흡혈인들
나를 위한다고, 아껴준답시고 조언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그중에는 분명 달콤한 칭찬의 말과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대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부류의 사람들도 조언이라고 내뱉는 말속에 자기 관심과 고민만을 털어놓기 바쁜 족속이 있고, 자기 기준이라는 가시를 객관적 피드백이라는 포장지로 대충 감싸 함부로 찔러대며 듣는 이의 기운을 죽여버리는 이들이 있다. 내 경우에는 대부분 가까운 관계에서 그랬다. 나와 친밀하고 나를 잘 안다는 이들. 헤어진 여자 친구가 그랬고 엄마가 그랬다. 친구랍시고 몇 놈도 그랬던 거 같다.
관계란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줌 직할 사람들이 내 상처에서 흡혈을 해가 기운을 뺏는 존재들이 된다는 것은 슬프고 아픈 일이다. 오히려 전문가들이나 멘토들의 뼈를 때리고 심장을 후벼 파는 차갑고 냉엄한 조언은, 아프지만 나를 성장시켜줄 감사한 채찍질이라는 생각마저 드는데, 언젠가 칭찬을 듣고 와서 기분이 날아갈 거 같은 날에도 주변에 몇몇 흡혈인들은'이 정도로 만족하다니 넌 아직 자격이 없어', '더 멀리 봐야지', '내가 널 잘 아는데 너는 이거랑 어울리지 않아''다 널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야' 따위의 말로 하늘 높이 날고 있던 기분을 맨땅에 수직 낙하시켜 개죽음을 맞게 한다. 싸늘한 주검을 보면서 내 속에선 억한 분노가 일렁인다. 그들은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진정 그렇게 믿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나를 위하는 처사가 아니다. 그러한 말과 행동들은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이루려는 자기애적인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이기적이며 자기방어적이며 자신을 이루려고 자신을 지키려고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마구 찌른다.
내가 도전하고 달려드는 분야와 일에 대해 부모님, 애인과 친구들은 전문가가 아님에도 나를 잘 안다는 명분을 앞세워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 같은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가까운 이들에게 대화를 걸고 들어주기를 바라는 입장에선 그 조언들이 쉼이 되고 힘이 되길 바랄 뿐인데, 따듯한 밥상과 포근한 이불을 기대하고 간 사람에게 그들은 의사를 자청하여 윗퉁을 까게 하고 차가운 청진기를 대고 주삿바늘을 여기저기 찔러대는 판이니, 이 어긋남과 온도차는 가까운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하는 애달픈 일이다.
표현해야 한다. 더 격렬한 대화로 서로의 어긋남을 맞춰가야 한다. 그런 노력이 끝난 후에도 내 에너지를 뺏고 기를 죽이는 흡혈의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마음에서 밀어내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멀어지자.
나는 오늘도 마음에서 한 사람을 밀어냈다. 외롭지만 이래야 내가 살 테니. 부디 빈자리에 따듯한 누군가가 들어와 앉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