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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FT explorer 허마일 Jan 10. 2020

배트맨이라고 안 쫄릴까?

언제나 후들거리는 나에게 

 내가 꼬수운 고향인 충남 대천을 벗어나 세상에 낯섦을 처음 마주했던 때는 부모님과 함께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 왔던 다섯 살 때였다. 새로운 집에서 만난 첫 일요일에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동네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에 갔다. 교회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하나는 어른들이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이었고 하나는 거실이자 주방, 식당이 되면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까지 가능한 다용도실이었다. 나는 네 살에서 막 넘어와 미운 다섯 살이 되기에는 영글지 못했는데, 낯선 세계에 도착하자마자 부모님과 떨어져야 한 탓에 처음으로 교회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었다.


 나보다 몇 살쯤 더 먹어 보이는 피지컬 좋은 형과 누나들이 기다란 테이블에 줄을 지어 올라서 있었다.

 “배트맨~~!!”

 맨 앞에 서있던 누나 하나가 열 손가락으로 가면을 만들어 얼굴에 뒤집어쓰고는 테이블 위로 빼꼼히 삐져나온 의자 등받이를 가볍게 뛰어넘어 바닥으로 착지했다. 그리고는 다시 반대쪽 끝으로 가 의자를 밟고 힘차게 테이블 위로 올라서는 것이다. 위풍당당한 배트맨들의 릴레이 점프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빼곡히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박쥐들의 질서 있는 하강이었다. 쿵. 쿵. 그들이 일으키는 진동에 내 심장도 덩달아 뛰었다.

 말이 없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멀찍이 서서 멍하니 영웅들의 액션을 부러운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었는데 방금 떨어진 뚱뚱한 형이 다가왔다. 안경은 작은 데다가 김이 서려있어 눈은 보이지 않았고 손에 살집도 상당해서 통통한 가면을 퉁퉁한 얼굴에 씌우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배트맨이었다.

 “야, 너 배트맨 할 수 있어? 못하겠지?”

 뚱뚱한 배트맨이 던진 갑작스러운 질문은 예상 밖으로 날카로운 표창이 되어 내 머리에 꽂혔다. ‘저 높이에서 점프라니, 못하겠어.’ 단념하고 돌아서는데 거실 한쪽 벽에서 열 명 남짓의 아기들이 누군가의 엄마인지 선생님인지 모를 여자 어른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아기들은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된 생아부터 세 살 터울의 영아들이었는데, 대부분 자빠져있거나 엎어져서 손가락을 빨고 있거나 두 발로 서있다고 해도 위태롭게 뒤뚱거리며 침 흘리는 베이비들이었다. “안녕..?” 나는 표정이 밝은 이들 한 두 명에게 말을 걸어보았으나 입술로 보글보글 거품을 만들며 웃고 있을 뿐 답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배트맨들과 함께 하자니 나는 점프할 엄두도 못 내는 겁쟁이 었으며 겉보기에도 그들의 골격과 근육에도 한참 못 미쳐 보였다. 그렇다고 마음껏 달릴 수도 또박또박 말도 할 줄 아는 나의 세상이 뒤뚱거리거나 옹알거리는 아기들의 세상과 함께 하기에는 문명발달의 차이가 너무 컸다. 평화를 수호하며 질서를 지키는 용맹한 영웅들의 세계와 그들의 가호안에서 삶의 아픔 따위는 모르는(어쩌면 언어도 모르고 걷는 법도 모른다면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고담시의 천사 같은 응애응애 시민들. 나는 이쪽도 저쪽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었으며 뚱뚱한 배트맨의 표창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아 이 평화로운 사회에 악을 행할지 모르는 억울한 범죄자였다. 사랑과 포용의 실천을 앞세우는 교회에서 나는 누구보다 큰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해 질 녘이 되고 어른들의 예배가 막바지임을 알리는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열심히 하강 훈련을 하던 배트맨들은 찬송을 긴급호출로 삼아 교회 밖 공터로 일제히 출동했고 베이비들은 여자 어른의 손길에 이끌려 각자 부모의 품에 돌아갈 채비를 하러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무도 없는 공간. 갑작스러운 정적이 흐르는 나 홀로의 은밀한 장소에서 왠지 나쁜 짓을 저질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잠깐 들었다. 이왕이면 나도 영웅이 되고 싶어 테이블로 다가갔다. 두근거림을 느끼며 의자를 밟고 올라섰다. 만만한 높이인데도 불구하고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나도 배트맨이라고’ 이를 악물고 테이블 위까지 올라갔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높이감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거실뷰에 고담시를 다 가진 것만 같은 의젖함을 느꼈다. 심하게 후들거리는 허벅지에 손바닥을 비빈 것은 땀도 닦고 다리도 진정시키는 일타쌍피의 스킬. 나는 분명 조금은 영리한 배트맨이 될 것이었다. 양 엄지와 검지를 말아 붙여 눈구멍을 만들었다. 손으로 만든 가면을 뒤집어쓰면 자신감이 더 생길 것 같았지만 오히려 공포감이 밀려왔다. 테이블에서 고작 10cm 튀어나온 의자의 등받이 부분이 가파른 절벽처럼 커 보였다. 다시 내려갈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히어로는 굴뚝 따위 이용하지 않는다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숨을 뱉었다.


 “ㅂ.. 배.. 트맨~~!!!!”


 힘차게 날아올랐다. 아니 곤두박질쳤다. 심하게 떠는데 에너지를 많이 썼는지 두 다리가 몸을 지탱할 힘이 없어서 몸뚱이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반사적으로 두 손이 땅을 짚었다. 손바닥에서부터 찌릿한 고통이 팔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일초쯤,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전기에 감전된 오징어 마냥 팔딱거렸다. 과연 이것이 강해지기 위한 영웅 진화의 고통인가. 애석하게도 영화나 만화에서 나오는 멋있고 극적인 변신은 없었다. 나는 얼굴을 땅에 처박고 눈물 콧물을 뿜으며 비명을 지르고 통곡했다. “으아아아아악!!!!” 잠시 후 그 많던 용감한 배트맨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고담 아기들과 어울리던 여자 어른이 달려왔다. 선량한 시민이 무능한 영웅을 구하는 마음에 안 드는 시나리오였다. 나는 서러움 복받쳐 더 크게 악을 쓰며 비명과 울음을 토해냈는데, 마치 영웅의 탄생이 아닌 악당의 최후에 가까웠다.

 때마침 예배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오는 어른들이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으아아 아!! 아파! 아파!" 발버둥 치며 울음 섞인 비명과 고함을 질러대는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는 너무나 먼, 악령에 씐 숙주의 모습이었으리라. 목사님의 기도를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느 틈에 등장한 아빠는 민망했는지 서둘러 나를 업고 교회 밖으로 나갔다. 어느덧 밖은 깜깜해져 있었다. 배트맨들은 어둠 속에서 택시에 실리는 나를 멍하니 바라볼 뿐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뚱뚱한 형과 눈이 마주쳤을 땐 일부러 더 소리를 질렀다. 뚱뚱한 영웅은 벌벌 떨고 있었다. 




 왼쪽 어깨에 금이 갔다는 진단은 다행히 내가 악마에게 잡아 먹힌게 아니라는 증거가 되었다. 보기 좋게 깁스를 했다. 팔을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목에서부터 연결시킨 통깁스였는데, 나는 깁스한 팔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유난히 거울을 많이 봤다. 거울 속의 다섯 살 짜리는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살아 돌아온 귀환용사였으며 살짝 삐거덕거리긴 했지만 어엿한 배트맨이었다. 생각해보면 깁스는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왼손 잡이었던 내가 오른손잡이로 길들여지기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 부모님의 나를 향한 사랑과 관심에 부스터를 실어주었다.

 “재석아, 노올자~”

 깁스를 한지 이튿날 점심, 밥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부르는 동료들의 호출 소리가 들렸다. 안방 천장에 배트 시그널이 아른거렸다. 출동이다. 엄마의 만류도 지구평화를 막을 수는 없는 법. 입에 있는 밥알을 우물거리며 뛰쳐 나갔다. 나는 비록 어깨 부상을 당했지만 그렇게 배트맨의 일원이 되었다.


 다소 이른 나이에 영웅이 되었음에도 내 인생은 끝없는 후달림과 싸워야 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테이블에서 점프했던 순간처럼 인생에서 크고 작게 결단해야 하는 일은 넘쳤다. 피곤한 겨울 아침, 소리치면서 이불 밖으로 나와야 하는 일. 처음으로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던 일.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을 제치던 일. 비싼 노트북을 할부로 카드 결제하던 순간. 서점에서 만난 책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결국 구입하는 일.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여자애에게 고백하는 일. 그렇게 만나고 헤어진 그녀의 사진과 편지를 버리는 일. 뼈를 묻겠다 충성을 맹세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던 일.

 내가 의도했던, 상황에 떠밀렸든 간에 후들거리며 선택하는 모든 점프들은 왼쪽 어깨뼈를 가로지르던 금처럼 삶의 균열을 일으켰다.




 왜 하필 박쥐였을까? 사자나 호랑이, 독수리 같은 품격 있는 동물들도 있는데 말이다. 브루스 웨인은 어릴 적부터 오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박쥐를 히어로 콘셉트로 잡았다. 거기에는 자신의 공포를 극복함과 동시에 범죄자들에게 공포심을 심기 위한 철학적인 이유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포라는 감정은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인생의 많은 부분들을 내포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함, 타인의 시선과 관계에 대한 고민들, 불확실함에서 오는 걱정과 불안도 그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웨인은 그 두려움, 공포심과 불안감을 온몸으로 씹어먹고 범죄자들을 덜덜 떨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로 체화시키며 배트맨이 되었다.

 현실과 미래, 변화와 유지, 포기와 끈기, 신념과 회의, 그리고 확실함과 불확실함의 경계에서 여전히 후들거리는 우리들도 그 진동을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수 있다면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박쥐가 아니라 겁은 많아도 용기를 내는 배트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깁스를 할지라도 행복한 배트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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