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과 트위스트를 추며 한 바탕 놀고 나서는 이마에 땀을 쓸어 올리며 앞머리를 젖혔더니 경로당 회장님이 하는 말이었다. 어른들은 이마 깐 머리를 왜 좋아할까?
엄마와 외할머니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마가 훤해야 복이 들어오는 미남상’이라며 심히 어필했는데, 튀어나온 이마와 일명 베지터 라인이라는 M자 경계선이 부끄럽고 싫었던 나는 ‘이마가 훤하면 여자가 달아나는 추남상’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격하게 이마를 가리곤 했다. 엄마는 점점 더 덥수룩하게 성장하는 나에게 어둠의 자식이냐는 핀잔을 주곤 했는데, 이마를 까면 빛의 자식이라고 하시렵니까? 그러고 보니 회초리 잔소리 말고 용돈을 주실 땐 당신은 나의 빛이 되기도 하셨지요.
스코틀랜드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하이랜드 종 : 소
당시의 나처럼 덥수룩한 동물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고산 지대와 섬들에 서식하는 하이랜드 소는, 눈을 가린 치렁치렁한 앞머리만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들은 여러 세기 동안 혹독한 날씨 속에서도 생존하고 번성해왔는데, 휘몰아치는 얼음바람과 병을 옮기는 날벌레를 막아주었던 것이 두꺼운 털과 바로 앞머리! 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그토록 지저분하다며 속사포로 뿜어내는 침 공격에 끄떡없었던 것이 다 앞머리의 가호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하이랜드 소의 두꺼운 털 만치 두꺼운 게으름 때문이지만, 씻기기 무척이나 힘들다는 것 까지 비슷하다니…종은 다르지만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나와 같은 짐승인 이 소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형제여… 하이파이브!
대한민국 국군의 부름으로 눈물의 빡빡이 시절(나라를 지키는 감격의 눈물로 하자…)이 잠시 있었지만 그 외의 세월 대부분을 덥수룩한 머리로 살았는데, 한 드라마에 마음 깊이 빠져들게 되면서 고민 끝에 이마를 까기로 결심했다.
2013년 SBS상영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시작은 누구나 그렇듯 역시 송혜교였지만 초장부터 내 마음에 불을 지른것은 다년간의 공백을 깨고 복귀한 조인성이었다. 배우 조인성이 맡은 오수라는 캐릭터는 첫 회, 첫 장면부터 “사람이 사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되는 거야?”를 뱉으며 넓고 시원한 이마만큼이나 두둑한 배짱으로 세상을 들이받는 캐릭터였다. 가난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생을 풀어가는 방식이 나와는 전혀 반대의 캐릭터. 특히 넓은 이마 위에 그려지는 다채로운 주름들이 인물의 내면을 다양하게 묘사하는데, 조인성은 이마주름 만으로 상처와 분노, 의심, 고민 등의 심리를 그려낼 줄 아는…그리고 송혜교의 사랑까지 쟁취해버리는 대배우였던 것이다.
들고갔던 사진.. (조인성 분)
나는 심히 망설이고 주저했지만,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예인 사진을 핸드폰에 띄워놓고 미용실로 갔다.
“어떤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지금 스타일로 다듬어 드릴까요?”
“음… 저기…에…(사진을 보여주는 손이 살짝 떨렸다.) 이렇게 해주세요.”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주가폭등의 드라마! 그 주인공을 보게 된 디자이너는 흔들리는 동공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아… 해드릴 수는 있는데… 느낌이 이렇게 안 나올 수 있어요. 괜찮으세요?”
“네… 해주세요”
나는 그렇게 누구도 믿지 못할 인물들과 음모가 판치는 막장 전개 드라마에 빠져 손바닥 뒤집듯이 앞머리를 배신했다.
그렇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디자이너도 나를 배신했다.’ 오수’처럼 챙겨 입고 이리저리 주름을 움직이며 이마를 그려내 보았지만 이것은 오수가 아닌 제대로 ‘오류’였다. 송혜교는커녕 송해 할아버지도 감동시키긴 힘들어 보였다. 믿었던 엄마마저 나를 외면하며 계속 어둠으로 일관했고. “간사해 보인다.” “일본 순사냐.” “돌았냐” ”도끼로 이마 까자”며 친구들은 조인성을 따라 하려 했다는 괘씸죄와 인성 논란을 들먹이며 나를 물어뜯었다. 매섭게 몰아치는 친구들의 공격, 날파리 같은 놈들의 드립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앞머리가 절실했다. 하…그 겨울, 바람이 불면 마음도 마빡도 참 시렸다.
조인성을 따라 하려 했다는 전과가 있지만 세월이 흘러 어쩌다 보니, 나는 청소년 인성지도사가 되었다. 또 할머니들과 춤추며 노래하는 웃음강사가 되었는데, 자칭이 아니라 타칭(진짜로…) 동안인 내가 내림 머리를 하면 트로트를 부르는 노래 강사라기엔 학생에 가까워 보인단다. 꾸준한 파마를 통해 나름 굴곡진 서른의 삶을 어필하며 뽕필을 제공하지만, 어머님들과 어르신들은 나훈아의 미소처럼 빤짝빤짝 광이 나는 내 이마에서 더욱 충만한 뽕필을 느끼신단다. 아직 삶의 맛을 한참 알아가고 있는 젊은 강사의 뽀얀 이마에는 인생의 얼과 한이 서려있지 않지만, 올해는 어르신들의 워너비 스타일이 되어보고자 한다. 할머니들에게는 박수와 환호를 받겠지만 젊은이들에게 받을 박치기와 야유를 감내할 자신은 없기에 강의 한정으로만…
나에게 이마를 깐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누군가를 안아 줄 너른 마음이 될 수도, 나의 작은 모질 함, 부족함까지도 드러내는 용기이기도 하다. 서른이 넘어 조금씩 트로트가 좋아졌듯이 청년기의 막바지를 보내며 자연히 드러나는, 여름과 가을의 묘한 경계일지도 모른다. 흐느적거리는 앞머리를 이마 위로 정갈하게 고정시킨다는 것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지금의 내 삶이 얼굴에 드리우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의 그늘을 걷어내고 흔들림이 없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닌 겁쟁이, 이마가 보일 듯 말듯한 가르마 스타일을 한 내 눈에는 이마를 훤히 드러낸 사람들은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이마 툭 튀! M자 베지터, 우리 사이어인들이여! 부디 용기를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