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친구 두 놈과 함께 골목골목을 누벼가며 땅에 떨어진 잡다한 것들을 주우러 다니곤 했다.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심심할 때마다 이 짓을 계속했는데, 우리는 물론 돈 없는 촌뜨기들이었긴 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 아닌 순전히 놀이였다. 빈 병이 돈이 된다길래 컵볶이라도 먹을까 봐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유리병의 무게 만큼이나 노동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너무나 묵직한 것이었다.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받는 금액이 터무니없었기에 냉큼 집어치웠다.
우린 계획적으로 다른 동네 원정을 다니며 나름의 체계를 갖춘 탐험대였다. 뜯기지 않은 과자봉지, 주인 잃은 장난감, 자전거 안장이라든지, 바람은 빠졌지만 멋진 그림이 박힌 고무공 같은, 어디인가 쓸 만한 잡동사니를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운이 좋은 날에는 이성계와 율곡 이이 선생을 넘어 세종대왕까지, 지폐로 역사 속 학자와 왕들을 영접하는 날도 더러 있었다.
한 번도 허탕을 친 적이 없었다는게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킁킁거리는 탐사견의 콧놀림 처럼 우리는 막대기 하나를 탐지기 삼아 오로지 땅바닥에 집중했기에,한번 출동했다 하면 뭐라도 집어왔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줍줍탐험대는 해체되었지만, 그 습관은 몸에서 쉽게 해체되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지갑이며 핸드폰이며 삐삐, 지폐, 심지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명 찌라시라고 말하는 북한선전 쪽지, 빳빳한 담배 한 개비, 곱게 접힌 행운의 편지까지도 내 눈에는 잘 만 보였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에게 운이 세게 좋은 놈이라고 불리었다.
운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돈을 주워 얻은 사람에겐 행운일 것이고 그 돈을 잃은 누군가에겐 불운일 것인데, 얻은 이도 잃은 이도 그저 블랙홀 같은 인생의 실타래, 그 불가항력에 휘둘리다 우연히 맛보게 된 ‘운'이란 말인가? 이 복잡한 메커니즘에서 과연 단 1%라도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단언 할 수 있을까?
제니스 캐플런과 바나비 마쉬는 행운을 만드는 메커니즘, 그 공식과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기서 행운이라는 키워드는 상대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목표달성, 성취, 성공과 기회로 일컬을 수 있겠다. <나는 오늘도 행운을 준비한다>는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환경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잡고 풀어간다.
심리학, 행동 경제학, 수학(확률과 통계), 신경학 등을 이용해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는 막연한 일상의 행운을 과학적으로 파헤치며 역학적으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삼각 플라스크에 담겨 거품을 일으키는 네 잎 클로버, 표지의 그림은 이 책을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하기에 손색이 없다.
행운을 거머쥐려면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은 제쳐놓고 순전히 자신의 통제 영역에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중략) 행운의 세 가지 요소가 손잡이를 당기면 세 가지 그림이 죽 나열되는 전형적인 슬롯머신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체리 그림 세 개가 나란히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에 중독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변동 비율 강화’라 부른다. 사람들은 언제 보상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손잡이를 잡아당길 때마다 보상이 주어지길 기대하며 계속 시도하게 된다. (중략) 우리가 새로운 직장이나 새로운 사랑 등 어떤 영역에서 좋은 결과를 원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러한 체리들이 나란히 나오게 하려고 오로지 좋은 운만 기다릴 필요가 없다. 재능과 노력이라는 체리는 우리의 통제권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투입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나는 오늘도 행운을 준비한다. 중에서-
행운을 만드는 3요소:: 재능, 노력, 운(통제권 밖에 힘)
제니스와 바나비는 이 중 재능과 노력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과학 전문지식보다는 다양한 사례들로 풀어내는 방식인데, 각양각색의 명사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방식과 한국에 사는 나조차도 알만한 유명인이 얽힌 이야기들로 쉽고 재미있게 독자를 이해시킨다. 책을 읽다 보니 열정과 끈기를 동반한 노력이라는 것도 재능이 아닐까 싶다. 성공한 이들이 보여주는 열정과 끈기는… 나 같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여전히 삼 체리를 목 빠지게 기다리며 살았는지 모른다.
적시에 적절한 장소에 있는 것도 순전히 우연일 수도 있지만 대게 그 장소에 존재하기까지 논리에 맞는 궤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신이 행운을 얻고자 한다면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 기회가 어디에 있을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오늘도 행운을 준비한다. 중에서-
선수경력 내내 과대평가 되었다고 많은 이들에게 비판받아온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가 있다. 바로 위치선정과 골 결정력의 대명사 필리포 인자기이다. 통산 300골을 넘긴 이 전설적인 최전방 공격수는 어찌나 골 냄새를 잘 맡는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공이 튀어 나갈 곳에 이미 서 있었고, 소위 말하는 주워 먹기의 달인이었던 것인데, 운도 계속되면 실력이라 하지 않았는가? 18년 동안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꾸준히 보여주는 경이로운 위치선정과 결정력을 운이라고만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잡다한 것을 그리도 많이 줍줍한 것도… 실력이라지 암.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확률 통계학으로 올바른 방향을 확립하고 실천 용기를 키우는 부분이었다.
작년에 빌게이츠가 극찬하며 미국 모든 대학의 졸업생들에게 선물로 주어 화제가 되었던 <팩트풀니스>라는 책이 있다. 이 신조어의 뜻을 한글로 풀이해보자면 ‘사실충실성’이라는 말에 가까운데, 두려움과 편견이 지배하는 사람의 약한 심리를, 사실(팩트)을 면밀히 따지고 분석해 흔들리지 않게 하는 힘을 뜻한다. <나는 오늘도 행운을 준비한다>역시 이 상황과 문제에 대한 본질 파악이 행운이 따르는 환경의 핵심이며 그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불안감을 없애준다고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사용하는 정신적 지름길을 뜻하는 휴리스틱스에 대해 말한다. 여러 가지 통계, 사실, 최상의 답을 검토하는 일은 흔히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좀 더 쉬운 방법에 의존한다. 그래서 친구의 의견, 뉴스에 나온 기사 혹은, 막연한 직감이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주게 된다. 문제는 사람들이 한 상황에서 효과가 있는 이 방법을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용하면 때로 잘못된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나는 오늘도 행운을 준비한다. 중에서-
위 내용에 대한 사례로 상어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극적이기 때문에 시청률 높이기에 좋았던 상어를 소재로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샤크 위크>라는 연례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반응이 좋았으니 당연히 온라인 특집도 했을 터, 상어 공격을 피하는 스무 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 방법 중에 고무로 된 잠수복을 입으면 맛깔나는 바다표범으로 보일 수 있으니 입지 말라는 것이 있었다. 여기서 역설적인 사실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의하면 미국에서 ‘해마다' 상어 공격으로 죽는 사람은 단 한 명인데 익사하는 사람을 '매일’ 열 명이라는 것! 상어가 무서워서 잠수복을 벗으면 부력으로 인해 익사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잠수복 입어야겠죠?
우한 페렴,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에 들끓게 하는 이 시점에 우리도 뉴스, 분위기의 자극이 만든 두려움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두려움과 분위기에 치우친 편향이 아닌 진짜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고 그렇게 운을 내 편으로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라기엔 유달리 급속 확산하는 이 우한 폐렴에 대해서 아는 바가 턱없이 부족하기에 나는 매우 겁이 난다. 사실 정보수집이 시급하다. 중국 당국은 하루 빨리 솔직해지시라!! ㅠㅠ 오늘도 도서관에 책 반납을 해야하는데... 연체를 무릅쓰고 가지 않았다.
나는 못났다. 친구가 잘되었다는 소식에 축하해 주면서도 배가 아플 때 가 많다. 남이 잘하면 운, 내가 잘하면 실력, 남이 못하면 실력, 내가 못하면 불운인 못난이. 이 책은 그래야 편하다는 내 배를 푹 찌른다. 행운은 독자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합정역 5번 출구에서 만나면 정이 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정거장에서 출발한 재능과 노력이 같은 지점에 다다랐을 때, 때마침 ‘운'이라는 2호선 열차가 딱! 도착하는 것이다. 합치면~! 정이 되는!… 아니 행운이, 되는 것이다.
왜 내 재능과 노력은 만나지 못하는지 궁금한 사람, 항상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이유가 궁금한 사람, 행운의 연금술사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엔가 땅에 떨어진 쓸만한 물건들은 지천으로 깔려있다. 내가 주변 사람들보다 줍줍에서 뛰어났던 것은 소싯적부터 훈련되었던 바로 그 감각, 땅바닥을 관찰하는 감각이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발달하였을 뿐이었다. (이것은 노력이자 재능에 속한다)그리고 그 물건이 있던 적소에 내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건 운이다)이 책을 읽고서야 설명이 가능해졌다. 자 이제 나도 이 메커니즘을 내 인생에 적용해보자. 내가 집중해야 할 땅바닥은 어디인가? 내가 주울 그분은 세종대왕 말고 이제는 신사임당 님이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