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FT explorer 허마일 Jan 21. 2020

친절하지만 잔인한 글쓰기 수업

김정선 작가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으며

올해 2020 경자년, 근면과 다산의 상징! 흰 쥐의 해를 맞이해 흰 종이 위에 글을 꾸준히 순풍순풍 낳고자 결심했지만 막막했던 나에게 한 줄기 빛처럼 찾아온, 단 돈 12,000원의 선생님을 만났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무려 20년이 넘는 교정 교열의 내공으로 내 문장을 검열해 줄 아주 귀하신 몸! 김정선 작가의 글쓰기 문장 퇴고법! 이다. 


‘남이 쓴 문장이든 내가 쓴 문장이든 문장을 다듬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처럼 맞고 틀리고를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그렇다. 

(중략) 

그렇다고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건 아니다.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기준 삼아 남의 문장을 손보는 것도 물론 아니다. 문장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은, 오답 노트까지는 아니어도 주의해야 할 표현 목록쯤으로 만들 수 있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 (도입부) 


[적] 

사회적 현상, 경제적 문제, 정치적 세력, 국제적 관계, 혁명적 사상, 자유주의적 경향 


어쩐지 ‘-적’이 부담스러워 보인다. ‘-적’을 빼고 다시 써 보면,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 세력, 국제 관계, 혁명 사상, 자유주의 경향 


훨씬 깔끔해 보인다. 그렇다고 뜻이 달라진 것도 아니잖은가. 그러기는커녕 더 분명해졌다. 


[의] 

1)문제의 해결 

2)음악 취향의 형성 시기 

3)노조 지도부와의 협력 

4)문제 해결은 그다음의 일이다. 


앞에 나열한 문장 중 ‘-의’를 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장은, 


1)문제 해결 

4)문제 해결은 그다음 일이다. 


‘-의’를 빼도 아무 문제가 없는 문장에까지 굳이 ‘-의’를 집어넣는 건 중독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문제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데 있다. 어떤 표현은 한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된다. (중략) 그러니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편리함의 중독자인지 살피라는 것뿐이다.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중에서 -


문장을 쓴다는 것 역시 노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노래방에서 나의 18번을 부른다고 해보자. 한참 감미로워야 할 도입 부분부터 시도 때도 없이 시전하는 바이브레이션과 못된 밴딩으로 감정선을 끊어버리며 노래를 망치고 있을 때, 그 우쭐거리며 떨고 있는 목울대를 손 날로 탁! 치고 싶지 않은가. (어제 코인 노래방 같이 갔던 망고야… 미안해… ) 

노래도 목소리만 좋다고 능사가 아니다. 적재적소에 적합한 호흡과 창법, 가사에 대한 표현력... 그리고 내가 망쳐버린 바로 그 감정! 등 짚고 넘어가야 할 요소가 많은 것처럼, 글쓰기에도 몹쓸 밴딩과 바이브레이션이 글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내가 우리말을 제대로 알고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며 뼈를 맞았다. 세종대왕님이 만든 한글은 위대했다. 의존명사, 접미사, 주격조사, 어쩌고저쩌고… 자칫 어지러울 수 있는 내용이 있지만, 이 책은 쉽다.   

한 책상에 마주 앉아 내 문장을 함께 짚어보며 티칭 받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매우 친절하다. 저자는, 우리말에 대한 작법이나 문법은 전혀 모르는 나에게, 구체적이고 다양한 예시를 통해서 핵심을 귀에 쏙쏙 박아주었다. 족집게 선생님, 일타강사의 자질이 다분하다. 


“이거 보세요. 이게 다 환자분 모공이에요…엄청나죠?” 굳이 보고 싶지 않은 내 모공을 보여주며 웃고 있던 피부과 의사 선생님처럼, 문장 속에 늘어져 버려서 수축할 낌세 없는 나쁜 습관들을 너무도 자세히 까발리신다. 친절하다 못해 잔인한 느낌까지 들었다. 친절한 금자… 아니 정선씨.. 


친절하지만 아픈 이 책의 매력을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피드에 올린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큰 챕터나 소제목으로 구분된 일반적인 형식이 아니다.  유유출판사의 기획이 아닌 저자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었다고 하는데, 문장에 대한 구체적인 다듬는 방법이 한 꼭지 나오면 그 뒤로 저자의 경험이 산문 형태로 한 꼭지, 번갈아 가면서 나오는 구조다. 편안한 수필이 수업 한 교시를 끝내고 만나는 쉬는 시간, 믹스 커피 한 잔의 여유와 같은 상쾌함을 선사하는데 (저처럼 뇌 용량이 작은 사람은 꼭 챙기시길. 수필 한 잔) 이왕이면 독자들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두 가지 형식의 글은 아쉽게도 각자도생하며 마이웨이를 가는데, 애초에 맥락적으로 연결을 시키려고 하다 실패한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부분부분 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니 따로 보지 말고 같이 보는 걸 추천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산문 형태의 글은 꼭지마다 스토리가 이어지는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저자가 단순한 20년 이상 내공의 교정 교열자가 아니라는 것! <동사의 맛>, <소설의 첫 문장> 등 무려 다섯 권의 책을 쓴 어엿한 문학인의 필력은 단순히 쉬는 시간을 메꾸는 믹스 커피가 아닌 고급 원두를 사용한 핸드 드립 커피다. 천천히 음미하자. 


책을 보고 나서부터 조금씩 내 글을 다듬어 볼 때, 투박하고 어색했던 문장들이 입체적이고 편안하게 느껴지니 절로 흥이 나는 중이다. 


논문, 기사, 수필, 소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건 봐야 한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 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무조건 사고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니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