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있는 개성의 음악으로 사랑받는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이자 보컬이면서 작가인 이석원 님의 산문집이다.
편지, 일기, 수필, 시등의 다채로운 형식과 반말과 존댓말, 나긋나긋함과 울부짖음의 맥락 없는 소리들이 한 주먹 쥐어다가 바닥에 내던진 모래알처럼 흩뿌려져 있지만 피카소가 한번 휘갈긴 붓질만큼이나 느낌 있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예술을 모르는 나에게도 작가의 글은 그의 다소 마이너 한 음악 세계만큼이나 그의 글에도 여기저기 찢기고 녹아내린 생각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들러붙어 만드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보통의 존재 중에서 -
일상의 소소하게 깃드는 행복조차 무채색으로 바라보는 이석원의 시각을 쓸쓸함, 우울함이 짙은 예술적인 감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뿌리 깊은 아픔과 고통으로 점철된 그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은 섣부름이다. 자신의 인생과 닮아있는 그의 문체는 먹먹한 고구마와 시원한 사이다가 갖춰진 한상차림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선생님들이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잘하는 게 있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기 마련이다.'등등의 사기를 안 쳤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랬으면 '왜 난 꿈이 없을까?'이런 고민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내 나이 서른여덟. 나는 아직도 생의 의미를 명확하게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여전히 고민한다. 다만 분명한 건 누구나 배우가 되고 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배우나 감독이 될 자질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 남은 생을 사는 동안, 내가 그저 관객의 안온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한들 꿈이 없다 뭐라 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이여, 꿈이 없다고 고민하지 마라. 그럼 관객이 되면 되니까. 그뿐이다.
- 보통의 존재 중에서 -
꿈이 없어 힘들고 자신 없었던 나의 지난날들.
이번 인생은 글러먹었다고 하면서도 나는 먹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돈을 벌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에서 말하는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근데 이게 어찌 보통일인가?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이고 비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 보통은 무어고 특별은 무엇이란 말이냐.
한 부족 안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던 자연인이 지금 강남 한복판에 온다면 그는 계속 평범하고 보통인 사람인 걸까? sns 혁명으로 시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금의 지구 한마당에서 어디까지가 내가 평범할 수 있고 보통일 수 있는 울타리고 판인 걸까. 분명한 건 내 뇌는 결코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뇌라 이런 깊은 생각을 싫어한다는 것. 그만 해야겠다.
책을 덮고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노래를 들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나는 존재였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별에 오면서 빛이 옅어지고 그렇게 가장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된다는 씁쓸한 이야기.
나는 본디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하게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시절 또래 아이들과 농구를 할 때 피지컬을 극복하기 위해 연마한 두 손 언더 슛으로 꽤나 높은 야투율을 자랑했다. 남들은 알까기냐고 놀렸지만 무턱대고 놀리기에는 지들이 던진 공들보다. 내가 낳은 알들이, 내 새끼들이 그물 안으로 잘도 들어갔다. 그런데 왜 그 하얗고 눈이 동그란 여자애 앞에서 만큼은 차마 나의 알까기를 보일 수 없었을까. 슬램덩크에 나오는 정대만을 흉내 내며 몸부림을 쳤다. 엉거주춤 낯선 폼으로 터무니없는 슛을, 짧은 두 다리 사이로 나오지 못한 알들이 나오는 족족 죽어버린다. 참혹했다. 격하게 흘리는 땀만큼은 몇 방울이라도 정대만의 것과 닮기를 바랐다.
골대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던 내 농구공처럼, 나는 그녀의 마음 털끝 하나 못 건드리는 보통도 안 되는 보통이었다. 내가 두 손으로 내 새끼들을 떠받쳐 올려 골인을 완성했다면 그녀가 나를 봐줬을까? 아니 두 손을 싹싹 비비고 박수를 치고 온갖 지랄을 다 떨었어도 너의 별에선 나는 그저 보통이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