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무의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여인의 춤을 추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정말로 나는 그 유혹의 섬으로 일 년에 두 번, 봄가을에 그곳에 살고 있는 여인들과 춤을 추기 위해 간다. 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는 노인들이라 매혹적인 무의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구수한 흥 가락은 내 몸을 들썩이게 만들기엔 충분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섬까지 차로 들어갈 수 있는 다리가 개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묻지 않은 섬이었다.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었던, 무뚝뚝하지만 책임감 있는 갯바위들처럼 노인들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살아왔다.
먹고사는 일을 하며 배를 타고 작은 섬으로 가는 일은 낭만적이다. 섬 수업은 홀로 떠나는 소풍의 설렘이다. 뱃시간에 맞춰 여유 있게 움직이다 보면 강의 외적으로 시간이 많이 남는데, 해변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거나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먹기도 한다. 특히 차문을 열어놓고 시트를 뒤로 젖혀서 만든 가죽 해먹이 일품이다. 내 힘으로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뿌듯한 파도 소리를 듣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소금기에 머리카락이 떡져 있었는데, 빳빳한 머리카락을 매만지면 막 시작한 프리랜서의 삶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파도와 바람, 햇살이 충만히 채워준 에너지를 섬에 살고 있는 노인들에게 다시 돌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 中
비록 사랑을 주는 존재들이 꽃다운 열아홉 살 섬 색시들이 아니어서 유감이었지만, 철새 따라 섬으로 놀러 온 총각 노래 선생님은 할머니들의 사랑을 받기 충분했다.
올해 4월은 유난히 힘들었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먼지바람처럼 행사와 일들이 밀어닥쳤는데, 더 해 먹겠다고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었다. 힘 빼는 법을 모르는 젊은 초보 강사는 눈이 뒤집어까지고 다리가 풀리는 과정을 거치다가 힘주는 법조차 까먹을뻔했다. 어렸을 때부터 거대한 식탐이 나를 설사의 노예로 만들어 변기에서 힘주는 법을 까먹게 했던 기억이 떠올라 소스라쳤다. 깊은 반성의 시간은 필연 일 수밖에.
몸도 마음도 후들거리던 시기에 강의차 가야 했던 무의도는 섬도, 섬에 있는 사람들도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존재임을 확신했기에(물론 돈이라는 아주 달달한 에너지바가 있지만) 기쁜 마음으로 준비했다.
그러나,
섬에서 나를 맞아준 것은 찬란한 햇살과 꽃내음이 아닌 매서운 비바람이었다. 격한 파도와 비의 환영식이었지만 전혀 반갑지 않았다. 가뜩이나 피로와 스트레스로 이미 쫄딱 젖어있는 나에게 폭우라니. 바다에서 맞이하는 성난 비바람은 소금기가 가득했다. 우산을 쓰고 있어도 머리카락과 얼굴이 금세 꿉꿉해지고 뻣뻣해졌다. 쉼을 얻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짠 비에 절여졌다. 그토록 짰던 것은 눈물 때문이었을까. 매번 나를 정겹게 맞이해주던 무의도가 소금을 뿌리며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거센 비바람에 노인들과 함께하는 수업도 지장이 있을 법이었다. 저조한 참석률과 어둡고 흐린 날씨가 수업 분위기를 더욱이 침울하게 만들 게 뻔했다.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려면 끈질긴 믿음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열을 가해야 한다. 비에 젖은 할머니들의 기분을 나의 열정과 텐션으로 뚝심 있게 달구어야 한다니. 방출함과 동시에 증발돼버릴 나의 에너지를 생각하니 부담이었다. 흥과 웃음을 파는 노래강사는 컨디션 관리가 절실한데, 흥이고 웃음이고 나발이고 나는 이미 소금에 절인 파김치인 것을.
수업은 단단히 준비해 갔지만 어차피 적은 인원에, 침몰된 분위기라면 나 역시 무리하지 않고 흐름에 맡겨 느슨히 요령을 피울 생각이었다. 가랑비가 스며가는 낙엽처럼 스리슬쩍 아스팔트에 쩍 하고 붙으면 되는 것이었다.
경로당 현관에 들어섰다. 우산을 접으며 그 속에다가 조금 남은 열정도 은밀히 넣고 있었다. 그러다 멈칫, 현관에 있는 무수한 신발을 보고 당황했다. 보라색, 남색, 검정, 바다색의 크고 작은 장화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얼핏 보아도 스무 명은 족히 넘는 장화 밭이었다. 얼이 빠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세찬 빗소리를 먹어버리는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무의도 수업 이례 최고의 출석인원이었다.
"아니, 어르신들 이렇게 비도 많이 오는 데, 어쩜 이렇게 자리해주셨어요?"
감동받은 척했지만, 어긋난 계획에 대한 난감함, 당황이었다. 웃는 얼굴을 만들려 노력하는 안면 근육들은 그 쉬운 차렷 열중쉬어도 안 되는 오합지졸이었다. 오와 열을 저리 잘 맞춘 장화만도 못한 내 눈코 입이야 말로 세 얼간이었다.
"응 오늘은 비가 와서 바다를 안 나갔어, 마침 우리 총각 선생이 오는 날이라니까 놀기나 하러 왔지."
센 비바람에 일하러 바다에 나가지 못한 노인들은 쌩쌩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나이를 초월한 젊음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그들에게, 날씨란 생계를 좌지우지하는 현장의 심판자이지만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의 영역에는 발끝도 못 내미는 듯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섬과 섬에 사는 노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이미 오랜 시간 살아왔다. 이들이 청춘인지 내가 청춘인지, 진짜 청춘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며 놀았다. 뜨거운 열기 속에 끝내 불이 지펴진 젖은 장작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쏟아지는 폭우는 그들을 축제의 자리로 부르는 폭죽이며 환하게 터지는 꽃가루였다.
세 얼간이, 내 눈코 입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로 마음을 맞춰 환한 웃음을 만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갈 땐 세차게 부는 소금 바람도 얄밉지 않았다.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불안해하고 많으면 많은 대로 버거워했던 내 모습을, 이 작은 섬은 달가워하지 않았으리라. 깨달음이 부족한 총각 선생은 이방인이었다.
무의도에서 잠진도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배 위에는 갈매기들이 여럿 날고 있었다. 아니 그저 날개를 펴고 가만히, 두둥실 떠 있었다. 하늘거리는 풍선처럼 그들은 요동하지 않고 위아래로 높낮이만 달리할 뿐이었다. 나는 비를 맞으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풍선 같은 날개들을 멍하니 보았다.
캔버스에 사정없이 휘갈기는 빗줄기와 바람을 배경으로 갑판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조급한 발걸음과 몸짓에 비해 고요하고 평온한 갈매기들의 움직임은 이질적이면서도 매력적이었다. 내가 고흐나 피카소였다면 이 장면을 그렸을 텐데. 그들은 파도를 즐기는 능숙한 서퍼들처럼 하늘에서 바람을 타면서 놀고 있었다.
역동적인 삶의 풍파를 즐기는 갈매기들의 눈은 작은 섬마을에서 춤을 추는 여인들과 닮아있었다.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의 2절 가사는 이렇다.
'구름도 쫓겨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 보는 총각 선생님'
작은 섬마을에 시름을 달래러 왔다가 쫓겨나는 구름처럼 내 마음도 쫓겨날뻔했지만, 이제는 그곳을 생각하면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