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꺼 인 듯 내 꺼 같은 내 꺼 아닌 내 꺼 이길 바라는 것들에 대하여
제법 농익었던 엔지니어 시절, 익숙함에 안일했던 나는 무거운 쇳덩이를 무심코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쓸데없는 것엔 그렇게 예민한 나인데 정작 내 몸뚱이에는 전혀 둔감했던 게 문제였다. 오른쪽 종아리에 근육이 뭉치는 듯하더니, 이틀 뒤에는 걷기도 힘들뿐더러 문제의 종아리는 거대한 무처럼 커져서 며칠 전까지 잘만 입고 다니던 청바지는 숨이 막혀 입을 수 없었다. 피치 못할 약속 자리에 나갈 때면 대학 시절 그렇게나 유행하던 스키니 바지를 난생처음, 요상하게 연출해야 했다. 스키니룩의 첫 경험보다는 빵빵하고 무거운 무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이 더 부끄러웠다. 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고 두 달을 나는 '내 꺼 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내 다리와 애타는 마음으로 썸을 타야 했다. 따끔 찌릿한 물리치료 데이트로 공을 들이면서 '이만하면 넘어오겠지'싶어 당기면 더 멀리 달아나버리는, 나를 술푸게 했던 여자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 울적해지는 밤엔, 괜스레 종아리를 욕하며 때려보기도 하였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한 몸 이기에 동거 동락하며 미운 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양보하며 서로를 인정해주면서 살게 되었다. 깊은 새벽, 갑자기 올라오는 고통스러운 쥐는 종아리가 지독한 악몽을 꾸었던 것이리라. 야옹야옹. 그렇게 쓸어만지고 토닥거리면서.
프리랜서 2년 차. 이전에 회사생활을 하며 지내고 겪은 경험보다 지금 훨씬 많은 것들을 배워 나가고 있다. 하늘과 바다가 열려있는 세상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준비와 계획하는 많은 일들 속에서도 삐끗하며 튀어나가는 6번 척추 디스크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돈도 꿈도 일도 관계도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오던 순정 넘치는 월급과는 달랐다. 달겨들면 뿌리치던, 퉁퉁 부풀었던 내 종아리처럼 각자의 개성으로 새침하고 도도하게 밀당을 한다. 나는 이제 많은 것들과 썸을 타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과 애타는 마음, 어쩔 때는 배짱을 부리기도, 욕을 하기도 하면서, 서로의 질투를 이용하기도 하면서 제법 능숙하게 사랑을 한다.
오늘은 나와 밀당하는 모든 것들이 침대로 찾아와 잠든 나를 쓸어만지고 토닥거려주는 밤이 되길 기대해본다. 혹여 내가 눈을 뜨면 거나하게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