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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 능력이고 행복이면.. 실패는 무능력 불행이냐?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가 ‘위’선을 떠는 것이 ‘대’단한줄 안다.

부유한 것이 독립운동가보다 열심히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경제적 부유함은 열심히 산 사람의 보상이고,
가난은 대충 살았던 사람의 결과일까?



경제적 부유함이 노력의 보상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가난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어야 삶의 의욕을 잃지 않을 수 있고, 혹시 부유함이 우연이나 부정함으로 만들어졌다면 부유함이 비난받을 수 있으니, 경제적 부유함은 노력의 결과야만 했어요.


그런데, 자산이 사유화된 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 경제적 부유함은 노력보다 운이 더 중요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의 자산이 잉여노동의 착취라는 기본구조를 이해하면

노력은 잉여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이 언제나 더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노력이 다 같은 것이 아니야.
부자아빠가 되기 위한 노력과
가난한 아빠의 노력은 달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고약한 개념을 만든 책은 투자나 경제 개념적으로 전혀 쓸모없는 책인데도, 부자아빠가 되는 노력이 따로 있다는 잘 못된 믿음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부자가 된 아빠는 보상을 받을 투자적 노력을 한 사람인 것 같아서 '부자'가 되면 옳은 것으로 포장을 하는 결과주의적 오류를 범합니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것은 부의 재부배가 되지 않는 시스템 때문이지, 개인의 노력의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이건, 로또 1등이 된 사람이 자기와 같은 생활 패턴으로 살다가 자기와 같은 날짜에 로또를 사면 당첨이 된다고 말을 하면서 낙첨자들이 자기와 다르게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잘못된 인과관계의 오류'입니다.
그런데, 유독 '부자'라는 주문은  그 오류가 신앙처럼 통합니다.


수천억 사기꾼 이희진에게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사람들은 이희진보다 노력을 하기 않은 사람들일까요?

수천억 횡령꾼 김영진의 회사에 투자한 돈 전부를 잃은 사람들은 김영진보다 노력을 안 한 것일까요?


자본주의에서 대표적인 보상인 자본은 사회가 구조적으로 재분배하지 않으면, 자산의 크기에 비례해서 커지는 금융의 구조 때문에 보상을 선점한 사람들이 보상을 독점합니다.

(100의 10%를 10번 받으면 200이 되지만, 10의 10%를 10번을 받으면 20이 됩니다. 처음에 차이는 90이지만, 다음의 차이는 180으로 비율은 같지만 총량을 키워서 절댓값의 차이가 벌어지는 방식으로 선점한 보상과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비율이 같아서 공정해 보이지만, 실질적인 값의 차이는 현저하게 불공정한 것이 자본주의의 금융시스템입니다.)

그리고 보상을 독점하는 시스템이 공격받지 않기 위해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시스템이 아니라 각자의 탓으로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 중 하나가 '결과주의'적 사고입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결과가 과정을 대변한다는 오류'의
결과주의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지 모릅니다.


20년을 CEO로 대우받으며 풍요롭게 살아온 어느 기업가는 횡령과 주가조작의 범죄를 처벌받지 않는 것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보다 더 굉장한 노력을 한 듯이 대우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와 조금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그의 위치가 노력의 보상이고 그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노력을 권장하는 표상이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결과주의에 익숙해진 우리는 자기 삶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일도

과정을 생각하지 못하고 목표만 이루려고 기괴한 계획을 만들어서 '노오력'을 하려고 합니다.


사기를 당한 사람과 사기꾼 중
정당한 노력을 더 많이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런데.. 고통을 겪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부유한 것이 더 뛰어난 노력의 보상이 아니고, 부정한 노력의 보상도 아닙니다.

부유하다는 것은 결과일 뿐 과정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다는 것은 성실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그냥 돈이 많은 상태인 것입니다.

부유하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삶이 정의롭거나 노력을 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결과주의'에서 오는 오류입니다. 반대로 궁핍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 게으르거나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굳이 철학적인 사고는 아니어도 결국 자산은 누군가의 잉여노동의 축적이어서, 어느 수준을 넘어선 자산은 사회적 노동의 갈취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맹자의 말처럼 칼로 직접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름이 없다 해도 세상은 눈에 보지이지 않게 정치로 죽이는 것에 무감각하듯이, 같은 착취라도 간접적인 자본 착취는 합법적으로 인정되어 무감각하므로 자본가를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보상이 운이면
뭐 하러 노력을 하면서 살아?


노력이 미덕으로 권장되고;

아무것도 없는 놈이 노력조차 안 하면 되겠냐며 비난할 수도 있지만, 노력과 보상은 생각보다 관계가 없어요.


노력은 삶을 사는 태도이고, 보상은 태도와 상관없는 운입니다.


노력은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즐기기 위한 태도입니다.

삶을 즐기다 보면 보상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보상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불행히도 보상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운동 경기에서 1등을 한 사람도, 경쟁에서 1등을 한 사람도 모두 참가자 중에 가장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 아닙니다. 보상을 얻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운입니다. 물론, 보상을 받은 사람의 노력을 폄하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의 노력도 폄하하면 안 됩니다.

결과로 노력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도 1등만큼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보상이 없다고 내 노력을 탓하면 나를 혐오할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을 그 사람의 노력 탓으로 폄하해서도 안됩니다.


노력은 삶을 대하는 태도이고
성공은 운에 따른 것이므로,
노력은
과정을 음미하려는 태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한정적이고 특별한 시간을 즐기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여행 중 음식은

배가 부른 것보다

함께하는 사람이나 분위기 혹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지금 먹는 음식이 비록 배를 채우지 못해도 과정을 음미하고 즐겼다면,

여행에서 과시할만한 경험이 없었어도 좋은 여행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인생이란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행복을 과시적 보상에 집중해서

여행 중에 흙도 먹고 오물도 먹고 심지어 맛있는 음식조차 오물과 섞어먹는데도

배 아프고, 심지어 배가 부르지 않아도

불확실한 돈과 성공을 집어 먹으려는 먹깨비 같은 계획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과는 운이어서,
결과보다 과정을 음미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이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습니다.




운조차 없어서
노력을 해도 보상을 받지 못한
나는 불행해.


노력을 했지만, 보상이 따르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노력을 할 의욕도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다시 노력을 한다고 보상이 보장되는 것이 아닌 것을 생각하면 자멸감마저 듭니다.

그래서 노력을 하다 보면, 보상이 자연히 따라온다는 종교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노력과 보상의 거짓 상관관계를 만들어서 맹신합니다. 그리고 운에 따라서 여전히 보상이 없다면, 더욱 자기혐오에 빠지게 됩니다.


삶의 행복이 보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좋은 차와 좋은 집에 있는 사람이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내뱉을 때 설득력을 갖고, 차가운 바닥에 누운 자가 성찰로 말하면 패배자의 탄식으로 느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의 삶이라는 여행의 경비를 계획하면서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보다 과정에 설레어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본 경험

알려주고 싶은 생각으로 가난한 자의 탄식을 길게 늘어놓습니다.



만화가 윤씨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대충 산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해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으나, 우리나라 법은 윤서인에게 무혐의를 주었습니다.

검찰은 또 "고소인들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한 표현으로 볼 수는 있지만,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모욕적인 언사로 보긴 어렵다"며 모욕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만화가 윤서인씨는
참 열심히 사신만큼
보상을 받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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