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큰 물결 속, 바다

대기업 입성

by 김쓰새

2011년 봄, 회사 언니의 제안으로 영어 회화를 배우기 위해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내 또래였는데, 모두 4년제 대학을 다니거나 이미 사회 경험을 쌓고 있었고, 내가 다니던 회사보다 훨씬 큰 무대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치열하면서도 다정했고, 온화하며 고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 물결 속에 합류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때부터 약 1년여간 필요한 것들을 하나 둘 채우기 시작했다. 영어 점수를 만들고, 컴퓨터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10월, 영화사를 퇴사하고

학력이 부족한 부분은, 그동안 돈을 벌면서 얻은 경험으로 설득하기로 하고 크고 이름 있는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물론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 겁도 없이 CS 회사에 들어가 교육을 받다 도망치기도 하고, 모 중소기업에 갔다가 거친 공장장에게 쌍욕을 듣고 뛰쳐나오기도 했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2012년 11월 말, 어느 대기업 인사팀에서 3개월 수습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 후 합해 일을 시작했다, 수습기간, 3개월을 통과하면 1년 계약직으로 변경되는 조건이었다.


내가 처음 부여받은 것은 업무가 아니라 워크숍 참석이었다. 팀은 첫 출근 다음 날을 포함해 1박 2일 워크숍이 있다고 했고, 나는 당연히 참석했다. 첫 출근 다음 날부터 낯선 사람들과 긴 밤을 함께 보냈다. 술게임을 하고 트로트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었고, 자정 무렵에는 팀의 1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사람들은 울고 웃었고, 그렇게 시작된 나의 대기업 입성은 의외로 따뜻했다.

회사에는 신입을 위한 멘토–멘티 제도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내 멘토는 언제나 똑똑하고 예쁘며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때로는 강단 있는 모습으로 조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녀에게 처음 배운 일은 인사팀답게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1년에 300만 원까지 의료비를 실비로 지원해 주었는데, 의료비 내역서와 영수증을 받고 지원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내 첫 임무였다.

그다음에는 채용 보조 업무를 맡았다. 면접을 진행했으며, 채용이 확정되면 입사 절차까지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았고,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의 태도를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타인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복리후생과 채용 보조를 경험한 뒤에는 4대 보험 업무를 맡게 되었다. 회사는 계약직인 나에게도 교육을 아끼지 않았다. 관련 강의와 전임자의 훈련을 통해 차근차근 업무를 익히게 했다. 직원들의 4대 보험료를 계산해 급여에 반영하고, 육아휴직·출산휴가·실업급여·산재 신청등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공단에 알맞게 신청하는 일까지 했다. 일을 하다 보니 각 보험의 역할과 의미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고, 수많은 근로자의 몫이 모여 사회라는 울타리를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란 바다의 일부를 처음 마주한 셈이었다. 어느 하나 개인만의 몫은 없었다. 모두가 함께 일궈내는 것이 사회였다.

입사 초반은 추운 겨울이었다. 회사원답지 않은 모양새였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셔츠와 정장 바지, 치마, 구두를 사고, 주기적으로 머리를 관리하며 단정하고 정갈한 모습을 갖춰갔다. 무엇보다 내게 빛났던 것은 목에 걸린 사원증이었다. 어떤 회사는 계약직과 정규직의 사원증이 다르다고 하던데, 다행히 우리 회사는 같았다.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서울 빌딩 숲을 거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가 대견했고, 기특했고, 무엇보다 자랑스러웠다.

좋았다.

그때 기억은 지금도 나를 벅차게 한다.


그러나 기대, 희망, 만족은 언제나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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