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나는 행복을 좇았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욕망을 향하고 있었다.
소액으로 주식을 하다 말고, 영어 공부를 조금 하다 말고, 카메라를 배우다 말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다 말았다.
남은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었다. 그럼에도 퇴사 후 1년 사이, 변화가 찾아왔다. 길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직업상담학·직업심리학·직업정보론·노동시장론·노동관계법규, 다섯 과목을 공부하면서 특히 심리학과 직업정보론이 마음을 흔들었다.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오해와 착각, 무지함 속에서 세상을 바라봐 왔는지.
심리학 중에서도 나는 프로이트의 ‘발달 단계’에 꽂혔다. 어릴 때 결정된 성격이 평생 나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이미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임신한 엄마를 때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라는 아기가 그 속에서 어떤 불안과 공포를 품고 태어났을지, 지금도 가늠할 수 없다.
친가 어른들도 냉소적이고 부정적이었다.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는 늘 긴장하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유치원 운동회날 달리기하던 장면이다. 그때 나는 그게 어떤 행사인지 몰라 친구들을 따라 뛰었다.결승선에 도착했을 때 환호하는 이유도 알지 못해 멍하니 서 있었다. 이 기억으로 나는 발달이 조금 늦었던 건 아닐까, 엄마에게 물었다. 하지만,엄마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집안일이 너무 많아 유심히 보지 못했어.
그래도 별문제 없이 지나갔잖아.”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지나오지 않았다.
아빠와 삼촌이 목을 조르며 싸우던 날 책상 밑에 숨었던 나,
엄마와 아빠가 지독하게 싸우던 밤 떨던 나,
그 아이가 지금의 나였다.
퇴사 후 비어 있는 시간 속에서 그때의 장면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밤마다 책상 밑에 숨었던 나를 떠올리며 울었고, 운동회에서 멍하니 서 있던 나를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나는 과거 속 아이와 끊임없이 마주해야 했다.
원망과 후회가 뒤섞여 부모와 다투기도 했다. “그때 왜 그랬어?”라는 말이 끝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공부 덕분에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직업정보론에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직업마다 급여가 정해지는 데 위험성과 책임 정도가 큰 요소라는 사실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해온 일들도 결코 가벼운 일만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저임금 노동자라고 여겼던 내 생각이 사실은 피해의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능·산업·직무·수요와 공급, 임금 수준과 고용 안정성까지
노동환경은 촘촘히 얽혀 있었다. 나는 그걸 모르고 세상을 원망해 왔다.
왜 이런 것들이 서른이 넘어서야 찾아왔을까. 늦게 찾아온 사춘기 같았다.
내 모든 게 뒤처지고 늦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