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짱 도루묵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신입도 경력자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서 나는 ‘꿀 직장’을 나왔다. 정년과 2년의 육아휴직이 보장된 곳이었지만, 나는 그곳을 도망치듯 떠났다.
멀리 달아난 만큼, 잃은 것들을 쫓기보다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다시 찾고 싶었다. 그래서 지역 도서관에서 시간제 일을 시작했다. 도서관 근무는 내게 “다시 일할 수 있다”는 다짐을 주었다.
조심스럽게 이력서를 냈고, 2019년 여름 서소문에 있는 한 기업에 합격했다. 인사팀 면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울시청 앞 초록 잔디가 반짝였다. 푸른 하늘은 내 기대만큼 희고 맑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내 안은 시원했다.
하지만 입사 후 약 15일간, 나는 왁자지껄한 사무실 한가운데서 뜻밖의 고독을 견뎌야 했다.
묵직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회색빛 파티션, 창밖을 가린 블라인드, 차가운 책상과 의자, 작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모든 것이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그 회사가 그 회사다.” 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직장, 집단 속에서 지내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특히 높고 강한 어조의 말소리를 무서워했지만 직장에서 이런 환경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상대를 마주하면 극도로 긴장하며 가슴이 막힌 듯한 고통을 느꼈다.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거친 사람, 부드러운 사람, 밝은 사람, 차분한 사람. 운이 좋으면 초반에 일을 잘 해냈고, 만난 사수마다 나를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좋은 사수를 만나는 건 행운이라는 것을 이때 비로소 알았다.
처음 자리 배치를 받고, 내 오른쪽 자리의 사수를 보며 생각했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고, 내게 방해되지 않겠구나.’
그는 맡은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강했다. 그게 내게 독이 될 줄은 몰랐다.
그의 한숨과 나무람이 날로 쌓여갔다. 내 고용 조건과 달리 한 시간 일찍 출근하라 요구했고, 우편물 나르기, 행낭 보내기, 국장·부장 커피, 탕비실 설거지까지 시키려 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퇴사를 고민하며 채용 담당자에게 전화했고,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노동력이라도 팔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회사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여자들을 보며 흠칫 놀라 피하거나 숨고 싶어졌다.
이러한 증상은 계속되었고, 결국 한 달 반 만에 우울증·불안증 진단을 받고 나는 다시 퇴사했다.
숨을 못 쉬겠고, 머리가 조이는 듯 괴로웠다.다 나은 줄 알았는데, 다시 아팠다.
나는 또다시 내 안의 경고음을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