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공백

유예된 자유

by 김쓰새

나를 지독하게 괴롭힌 용종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고 2주 뒤, 퇴사했다.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끝없이 잠만 잤다. 자고 또 자도 피로는 줄지 않았다.


퇴사 한 달 후, 제대로 인사 못해줬다며 팀 회식에 초대받아 참여했다. 시작도 끝도 회식이라니. 우리나라 직장은 회식 없이는 끝맺음조차 어렵다.


어느 정도 에너지가 회복되었다고 느낄 즈음, 퇴직금 일부로 노트북 하나를 샀다. 행복을 좇겠다며 도망친 만큼, 뭐라도 써야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 동안 글 한 자도 쓰지 못했다. 무력감과 허탈감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 시절 나는 밤새 드라마를 몰아보거나, 평일 낮 예술의 전당에서 미디어 아트 전시를 보곤 했다. 텅 빈 극장에서 혼자 코믹 영화를 독점하기도 하고, 독서모임에 나가 삶과 죽음에 대해 토론했다. 어느 저녁엔 이태원에서 미니 음악회를 들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도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이미 사이가 멀어진 탓일까. 버스를 타고 강남 끝자락, 부암동과 덕수궁, 한강을 떠돌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느 날 광화문 교보문고를 어슬렁거리다 브런치를 먹으며, 애써 외면했던 노란 리본을 한참 바라보았다. 면접을 보러 간다며 뉴스를 끄고, 광장을 지나쳐버렸던 부채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아스팔트에 스며들 듯 녹아내릴 것 같았다.


몇 년간 누릴 수 없던 자유였다. 어떤 책에서 읽었다. “고통 없는 자유는 없다”라고.


수술과 퇴사로 요양이 필요해 결국 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했다. 그 선택이 내 삼십 대를 집어삼킬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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