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다시, 직장인

행복하자

by 김쓰새

그렇게 괴로웠던 직장 생활을 다시 할 수밖에 없는 건 돈 버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고 받아들이며 가까스로 들어간, 최근 2년간 다닌 회사에서 임대차 관리를 하고 있다. 무슨 이유로 이일을 맡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다.


정~말 잘 모르는 일이고 귀찮은 일이다. 수도권에 있는 매장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야 하고 관련 서류를 받아야 한다. 매장 직원과 임대인, 관리인과 소통해야 한다. 매우 난감한 일이다. 사람이 다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내 기준의 상식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으니까.

법인회사와 거래를 하려면 갖춰야 하는 게 있는데 몇몇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감증명서나 사업자증명서와 같은 서류의 필요성을 모르고 알더라도 내주는 것을 굉장히 번거로워한다. 신뢰 있는 거래를 하기 위한 정책인데 더 이상 계약을 안 하겠다거나 나가라고 한다.


나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회사의 원칙이나 규칙을 지키는 일을 한다. 나는 뭣도 아니고 그냥 회사원이다. 위치로 나를 설명하자면 회사 지하 주차장에 굴러다니는 먼지 정도? 언제든 없어질지 모르는 존재다.

안 그래도 전화하는 일을 싫어하는데 하루 종일 임대인, 관리인과 통화를 해야 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임대인들은 착하고 친절하며 상식적인데 가끔 한 두 명이 나를 화나게 한다. 임대인보다는 건물에서 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관리소장님들이 무지 무섭다. 그래도 지금까지 연락하고 친근하게 때론 멍청하게 굴다 보니 이제는 조금 가까워졌다. 깐깐하기 그지없던 어느 소장님은 나에게 안부도 물어주고 해 달라는 일에 협조도 잘한다. 모든 일에는 시간과 실수가 필요하다. 누군가 하던 일을 이어받느라 그 틈에 생긴 어처구니가 있었다. 그런데 처음이라는 이름의 일이 서서히 내 것이 되고 있다. "그만두겠다" " 안 하겠다" 다짐해도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다. 멈춰야 하는데 하고 있다. 내일모레 휴가를 썼다. 휴가 날짜까지 해야 되는 일도 거의 다 했다. 안 할 거였다면 시작도 안 했겠지


가끔씩 직장인이 아닌 친구들에게 회사 일을 넋두리한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하면 되지 뭐 걱정이야?"

이는 정말 조직을 모르는 말이다.

직장에서는 펜 쪼가리도 마음대로 살 수 없다. 어떤 일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허락과 명령이 필요하다.

조직은 혼자 빨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리게 천천히 나아가야 완성된다.


지금도 나는, 회사에서 14만 원을 내보내는 일에 2시간을 쓰고 있다.

전표를 생성하여 기안을 했고 해당 팀장에게 결재를 받고 회계 담당자가 최종 결재를 하는데 그 담당자도 자신의 팀장에게 최종적으로 확인을 받아야 한다. 담당 팀장의 확인이 끝나더라도 돈을 내보내는 사람에게 일이 전달되는 한 번의 과정을 더 거치게 된다. 그 사람은 은행 상황이나 계좌 상태를 살피고 송금 버튼을 누른다. 내가 한 일은 9시에 시작되어 16시에 거래처에 돈이 입금되었다. 총 7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견디는 게 직장인의 몫이다. 무엇이든 혼자 결정할 수 없고 혼자 실행할 수 없다. 회사 대표라 할지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조직이 번거롭기만 한 이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여러 겹의 방패를 쌓아 두고 어떤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다. 즉, 직원이 방패가 되는 거다. 이것을 책임이라고 본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전표를 만드는 일의 책임 값이 1이라면 그것을 허락한 팀장의 값은 2,3 정도 된다.


이후 담당자의 값은 더 커지고 최종적으로 일을 끝낸 사람의 값이 제일 크다.


이 과정을 매시간, 매일 지나는 이들이 바로 직장인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는 데 나는 20, 30대를 썼다. 이제는 알았으니, 오해는 줄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살기로 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다시 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되었다. 내 인사 결정자가 내게 말했다. “나대지 말라” 나는 그 말이 기뻤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 나대는 모양새를 갖췄었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거 같아 좋았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조용하게 별탈없이 직장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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