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완치일까?

견딤으로 찾은 일상

by 김쓰새

지난 3년간 나는 우울증과 싸우며 약을 먹고, 극한의 하루를 견뎌냈다.
잠 못 이루는 밤과 마음을 잠식하는 불안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힘든 날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야 이렇게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

요즘은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일상, 규칙이란 단어도 있는데 왜 루틴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난 일상을 만들기 위해 아니 얻기 위해 수많은 날들을 쌓고 쌓아 영겁에 이르게 했다.

요즘 나는,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난다. 잠에서 완전히 깨기까지 한 30분 걸린다.
여름부터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 침대를 두고 살았다. 가을이 깊어지면 다시 방으로 옮길 거다. 온몸을 늘였다 줄였다 하다가 순식간에 번쩍 일어나 곧장 화장실에 가서 밤새 쌓인 노폐물을 배출한다. 잠에서 깨기 위해 찬물로 세안하고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작은 방으로 가 오늘 입을 옷을 정한다. 그리곤 싱크대 앞에 둔 작고 약한 접이식 식탁과 의자에 앉아 두유와 삶은 계란을 먹는다.

이를 닦는다. 방에 가서 옷을 입고 얼굴에 스킨로션을 바르고 톤업 크림을 바른다. 밤새 뒤척이느라 꼬부라진 머리칼을 빗질과 고데기질로 정돈한다. 양말을 신고 가방에 핸드폰을 넣고 아침약을 먹은 후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온다.

아침 7시 40분이다.


집에서 403m를 걸어가면 지하철 역이 나온다. 2층에 계단으로 올라간다. 교통 카드를 찍고 승강장으로 내려간다. 원활한 환승을 위해 반대 방향으로 200m를 더 걷는다. 열차가 오면 탄다. 이미 사람이 꽉 차 있는데 빨리 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문쪽에 옹기종기 모여 자릴 잡고 있다. 이때는 꼭 발에 힘을 주어야 한다. 잡을 게 없으니 열차가 조금만 흔들리면 중심을 잃고 자빠지기 십상이다.

3개 역을 지나 내린다. 다른 호선 열차를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서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직진한다.

에스컬레이터나 컨베이어벨트는 버프다. 그런데 가끔, 이 기기들이 고장이 난다. 그럴 땐 다리가 더 무거워진다.
편의점을 지나 빵집을 지나면 있는 계단으로 내려간다. 지하철은 지하 깊은 곳에 있다. 또 다른 세계다.

요즘 들어 자꾸만 열차에서 나쁜 마음을 갖게 된다. 이 마음을 구차라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다.
같은 칸에 있는, 자리를 차지한 사람을 미워하고 금방 내릴 거 같은 사람이 누군지 추측해 보고 아무 잘못 없는 상대를 저주하는 수준 낮은 바람을 가지며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며 32분간 열차에 몸을 맡긴다.
서서 갈 때면 양 발에 힘을 고르게 분산시키려고 한다. 이제는 서서 자는 경지에 도달했다. 이토록 짜증스러운 시간을 보내면 지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또 계단을 오른다. 회사와 가까운 출구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무엇도 가까운 게 없고 멀리 있다. 출구를 향해 걷고 또 걷는다. 한 줄짜리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몰려든 직장인들이 긴 줄을 선다. 줄이 줄어들면 내 차례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 드디어 지상이다. 회사까지 207m를 또 걷고 걷는다. 망할, 회사다. 1층 로비를 지나, 비상계단으로 가서 또 계단을 오른다. 3층 도착이다.


사무실 문을 열고 곧장 사물함으로 가서 노트북을 꺼낸다. 자리에 가서 책상 고리에 가방을 걸고 노트북을 거치대 위에 올리면서 전원을 켠다. 5분가량 예열과 시동을 거친 노트북이 겨우 켜지면 사번 입력 후 출근체크를 한다. 출근 완료. 아침 8시 50분이다.텀블러를 들고 커피머신으로 간다.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얼음을 넣고 물을 받는다. 커피와 얼음 공급은 회사 최고의 복지다. 너무나 감사하다. 커피를 들고 자리로 오면, 메신저와 아웃룩을 열고 어제 올린 결재 문서들의 진행 사항을 본다. 반려나 보류된 게 있으면 짜증이 솟구친다.

메신저를 열면 내가 읽지 않은 쪽지 수가 표시된다. 또 짜증 난다.


짜증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일상이 나에겐 소중하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평온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을 위해 그동안을 살아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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