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흰색 민소매 블라우스 위에 여름 재킷을 걸치고, 초록 잔디가 반짝이던 서울시청사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장면이 그날의 잔상으로 남아 있다. 그때의 세상은 내 기대만큼이나 희고 푸르렀다.
서소문에 있는 모 기업에 합격한 뒤, 입사 전 인사팀과의 면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엄마를 만나 근처에서 일본식 냉우동을 먹었다. 태양이 따갑게 내리쬐는 날이었지만, 내 안이 시원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입사 후 약 보름 동안 나는 왁자지껄한 사무실 한가운데서 고독을 견디고 있다.
예전에 한 기업에서 퇴사를 유도하기 위해 직원의 업무를 빼앗고 자리를 복도로 내몰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의 상황이 그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물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내 등은 왜 그렇게 따가웠을까.
입사 첫날과 둘째 날까지는 정말 좋았다.
내가 뚱해진 것은 수요일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나에게 일을 인계하던 계약직 직원은 자꾸만 내 고용 조건과 다르게 한 시간 이른 출근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우편물을 나르고, 행낭을 보내고, 아침마다 국장과 부장의 책상에 커피를 올려놓고, 탕비실 설거지까지 시키려 했다. 나는 결코 그런 일을 하는 조건으로 이 회사와 계약하지 않았다. 인사팀과 부서 간의 소통 부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짐을 챙겼다.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거쳐 1호선 청량리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떠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회사 인사팀 채용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퇴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단 돌아와 퇴직서를 작성하고 가라고 했다. 그 정도의 마무리는 하고 나가는 게 낫겠다는 이성적인 만류가 나를 다시 회사로 돌려보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나를 힐끗거리는 것 같았다. 계약직 직원이 건넨 인수인계서를 내밀며,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이건 채용 사기라고, 나는 이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나를 채용했다고 떠벌리던 회사의 민낯을 언론에 다 까발리겠다고 강한 말로 진상을 부렸다.
인사팀에서는 퇴사를 말리며 이미 부서에 설명했으니 돌아가면 업무를 정정해 줄 거라고 했다.
십여 년 전, 처음 일자리를 구했을 때 만난 회사에서는 손님이 오면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고 얼음을 다섯 알씩 넣어 내왔다.
그 일을 하던 선배에게 나는 말했다.
“앞으로 이건 제가 할게요.”
그 후 다닌 회사들에서도 회의 때 내가 준비한 차의 반응이 좋아 으쓱해지던 어깨가 있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오늘, 그 기억은 왜 분노가 되었을까.
어릴 때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일을, 왜 커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동안 나는, 그 일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