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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노예선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2020년 2월 호


글   조엘 K . 본 주니어, 실비안 디우프, 첼시 브래스테드 l 사진   일라이어스 윌리엄스 l 그림   세드릭 허커비


1860년 108명의 아프리카인들을 태운 클로틸다호가 미국 앨라배마주에 도착했다. 이 배는 미국 해안에 도착한 마지막 노예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후손들은 노예로 끌려온 조상들의 이야기를 아직도 전하고 있다.


1860년 무렵 노예로 팔려 온 사람들은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다. 노예들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는 제조업과 철도 그리고 은행에 투자된 자본을 모두 합친 것보다 높았다. 미국 앨라배마대학교의 노예제 역사학자 조슈아 로스먼에 따르면 당시 노예들이 생산한 면화는 미국 수출품의 35~40%를 차지했다.

베르네타 헨슨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은행들이 앨라배마주, 미시시피주 그리고 루이지애나주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대농장과 남부 은행, 저당 잡을 수 있는 노예들에게 투자했죠.” 로스먼은 말한다.


아프리카타운에 있는 연합선교 침례교회에서 교회의 건립을 기념하는 연례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제럴딘 헌터(맨 왼쪽)와 캐롤린 해리스가 헌금 접시를 돌리고 있다.

미국에서 노예 수입은 1808년 이후 불법 행위가 됐다. 1859년 무렵 미국 내 노예의 가격이 치솟아 농장주들의 이윤이 크게 줄어들자 일각에서 노예 무역의 재개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커졌다.


게일 우즈


티모시 미어는 노예 무역 재개를 열렬히 지지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미어는 북부의 사업가들과 만나 열띤 논쟁을 벌이다가 과감한 내기를 제안했다. 자신이 아프리카인 포로들을 배에 실어 연방 당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빌로 데려오겠다는 것이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2020년 2월 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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