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2020년 5월 호
글 알렉시스 마리 아담스 l 사진 주세페 누치
이탈리아 풀리아주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목가적인 지역에는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행위가 여전히 지역사회의 풍습으로 남아 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눈치오 마르첼리(65)는 자신이 기르는 양 1300마리를 몰고 집을 떠난다. 그의 집은 이탈리아 중부 아펜니노산맥에 자리 잡은 중세 도시 안베르사델리아브루치 인근에 있다. 마르첼리와 그의 목자들 그리고 이 지역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몇 명의 손님들은 사흘간 약 48km를 걸으며 양들을 마르첼리의 농장 위에 있는 고산 지대의 목초지로 몰고 간다.
농장에서 양들의 여름 목초지까지 가는 경로는 ‘트라투로’를 따라 나 있다. 트라투로는 지난 2300여 년 동안 이어져온 이런 이동 풍습에 따라 생겨난 길을 일컫는 이탈리아어다. 양떼와 목자들은 안베르사델리아브루치의 자갈길을 달가닥거리며 통과한 뒤 위쪽으로 힘겹게 올라간다. 그들은 광활하게 펼쳐진 야생화 들판, 오래된 너도밤나무와 소나무로 가득한 숲, 허물어져가는 석조 건물들로 이뤄진 마을을 갈지자 모양의 경로를 따라 지나간다. 3일 째 되는 날 오후, 그들은 여전히 정상이 눈으로 뒤덮인 몬테그레코산 아래에 있는 해발 약 2000m의 고원에 도달한다.
이 고원은 로마에서 불과 1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잊힌 세상 같다. 호박벌들이 야생 오레가노와 백리향 사이를 훑고 다니며 검독수리와 매가 아펜니노산맥 위로 펼쳐진 밝게 빛나는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또한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허브와 풀, 야생화 수백여 종이 자란다. 이곳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이곳은 어느 누구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 만한 장소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2020년 5월 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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