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2017년 12월 호
글·폴 살로펙 사진·존 스탠마이어
유명한 무역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나선 2400km의 도보 여행을 통해 온 세상 사람들이 중앙아시아로 모여들었던 시대를 돌아본다.
물. 깨끗하고 신선한 마실 수 있는 물.
3년 넘게 도보 여행을 하는 동안 물을 찾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나는 지금 세계를 걸어서 횡단하며 석기시대에 지구를 탐험한 최초 인류의 사라진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여정을 시작할 때에는 낙타가 목을 축이는 작은 물구덩이부터 소금물이 배어 나와 질척해진 진흙탕까지 걸어갔다. 아랍 헤자즈 사막에서는 한 오아시스에서 다른 오아시스로 옮겨 다녔다. 한겨울 캅카스산맥 정상에서는 사방에 물을 두고도 갈증에 괴로워했다. 물이 바위처럼 꽁꽁 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정말 처음이었다. 내가 구덩이 속에 묻어뒀던 물통에서 누군가 물을 퍼간 것이다. 얕은 구덩이였지만 60ℓ의 소중한 물이 담겨 있었다. 물이 사라지다니.
키질쿰 사막에 숨겨둔 내 물을 훔쳐간 도둑은 바로 ‘진’이다.
진이 누구냐고?
진은 사막을 떠도는 신령이다. 스텝 지대 유목민에 따르면 이 신령은 끝없이 펼쳐진 중앙아시아 평원을 돌아다니며 여행객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서구에서는 종종 지니라고 불리는 진은 밤이면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다니고 뱀이나 늑대로 변신하기도 한다. 중국 서부 롭 사막을 횡단하던 마르코 폴로는 진에 대해 행렬을 이루며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내 경로를 이탈하게 만드는 교활한 존재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속아넘어간 여행자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수없이 많다’고 기록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2017년 12월 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