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2017년 12월 호 중
글·크리스틴 로미 사진·사이먼 노퍽
신자들은 그를 하느님의 아들로 공경한다. 무신론자들은 그를 전설적인 인물로 치부한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살던 시대와 장소를 반영하는 형상들로 그를 묘사해왔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성지에서 발굴된 유적들은 고고학자들이 허구와 사실을 구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에우제니오 알리아타의 사무실은 현장에서 손에 흙을 묻히며 일하기를 좋아하는 여느 고고학자의 연구실처럼 보인다. 줄자 등 여타 발굴용 도구들로 수북한 책장에 발굴 보고서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중동에서 만난 모든 고고학자의 사무실과 비슷한 느낌이다. 알리아타가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초콜릿색 수사복을 입고 있는 점과 그가 속한 본회가 채찍 수도원에 있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이 수도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 로마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 면류관을 쓴 곳이다.
‘전승’은 이 지역에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전승에 따라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의 탄생지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무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핵심이 되는 장소 수십 곳으로 관광객과 순례자들의 인파가 몰려든다.
고고학자였다가 기자가 된 나처럼 모든 문화가 흥했다 망하고 그 시대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늘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고대의 유적지를 뒤져서 한 인물이 살았던 삶의 조각들을 찾아내는 일이 헛고생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그 인물이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즉 전 세계 인구 중 20억 명 이상이 신의 아들이라고 믿는 인물이라면 이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인도라도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알리아타 신부는 내가 방문할 때마다 늘 반겨주고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참을성 있게 내 질문을 받아준다. 성서고고학 교수이자 프란치스카눔 성경연구원의 박물관장인 그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일원이다. 이 수도회는 성지 예루살렘에서 700년 동안 옛 종교 유적지들을 살피고 보호해왔으며 19세기부터는 과학 원리에 따라 발굴 작업을 벌여왔다.
신앙심이 깊은 알리아타 신부는 고고학자들이 기독교의 중심인물에 관해 밝혀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마음 편히 받아들이는 듯하다. “2000년 전에 살았던 특정 인물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면 이례적인 일이 되겠죠. 그러나 역사적 기록 속에 예수가 남긴 흔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말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2017년 12월 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