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 진상규명 청원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단역배우 집단 성폭행 사건 청원' 올라와

by 이영일
RTEHT.jpg ▲4일 오후 3시 기준 청원인은 3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


16년 전 집단 성폭력 피해 후 자매가 잇따라 목숨을 끊은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국회 청원이 올라와 시민들의 호응이 일고 있다.


지난달 26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단역배우 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한 청문회 및 특검 요청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단역 배우였던 피해자 양아무개(당시 34세)씨가 2004년 당시 보조 출연자 반장 12명에게 40여차례의 성폭행 및 성추행을 당하고도 제대로 된 수사를 받지 못해 고소를 취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자세한 진상 규명과 국회 청문회, 피해자가 강제 고소 취하를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는 것이 청원의 주 내용이다.


4일 오후 3시 현재 청원인은 3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오는 1월 25일까지 5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국회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청원 내용을 심사해 본회의 회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경찰 조사 과정은 1년 반이나... 수십번의 대질심문과 2차 가해 겪으며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


당시 양씨는 경찰에 이들을 고소했지만 가해자들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피해자를 괴롭히고 또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가해자들과 수십번의 대질심문까지 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시 경찰은 "다 잊고 사회에 적응하라", "가해자 성기를 그려봐라"는 2차 가해를 가한 것으로 의심된다.


청원자 조아무개씨는 "피해자 양씨는 피의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30번 40번 같은 내용의 경찰조사를 받았고 심지어 피고인들의 협박전화에 시달렸다. 조사 과정은 1년 반이나 됐고 사건이 검찰로 이송되자마자 고소취하서를 작성하게 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무너졌다"며 피해자가 제대로 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양씨는 고소한 지 1년 7개월 만에 고소를 취하했고 취하 3년이 지난 2009년 8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층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 양씨는 유서에는 "날 단단히 갖고 놀았다. 더 이상 살아 뭐 하겠니"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양씨는 그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당시 경찰 조사팀은 성폭력 담당이 아니라 경제팀이었고 형식적 조사를 1년 넘게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 양씨 고소취하 3년여만에 극단적 선택, 6일후 죄책감 못 이긴 동생도 목숨 끊어


IE003566809_STD.jpg ▲지난해 7월 22일 해당 사건을 다룬 KBS 2TV ‘스모킹 건’ 방송 화면. ⓒ KBS 2TV ‘스모킹 건'


불행은 계속됐다. 양씨의 자살 6일 후인 9월 2일 양씨의 동생(당시 30세)도 경기도 안양시의 한 건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니에게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소개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언니의 장례를 마친 후 목숨을 끊은 것. 당시 동생의 유서에는 "언니가 보고 싶다. 언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 엄마는 강하니까 복수한 뒤 20년 후에 만나요"라고 적혀 있었다. 동생의 자살 약 두 달 뒤인 11월 3일 자매의 아버지마저 뇌출혈로 사망했다.


피해자 어머니는 가해자 12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2015년 법원은 피해자가 생전에 쓴 일기장 등을 토대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면서도 "소멸시효가 지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 부언에 공권력이 범한 참담한 실패를 적시했다.


"공권력이 양00에게 가해졌을지 모를 폭력과 악행에 대한 실효적 예방책을 마련하지도, 진상을 밝혀내고 가해자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음으로써 피고인 측에 치유 받을 기회를 주지도 못한 사실만큼은 분명한 바 그 부작위가 두 자매의 자살이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을 개연성에 비추어 보면 이는 국가 공권력의 총체적 실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사건은 2018년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확산하면서 재조명돼 경찰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렸지만 공소시효 만료 사유로 종결됐다. 이후 지난해 7월 22일 KBS 2TV <스모킹 건>에서 딸을 잃은 억울함을 1인 시위로 호소해 온 어머니가 직접 출연해 당시 상황을 절절하게 증언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며 다시 관심을 촉발했다.


현재 홀로 남겨진 어머니만 당시 성폭력 및 성추행을 한 12명과 경·검찰에 대해 인권유린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당시 피고인들은 1인 시위를 하는 70대의 어머니를 상대로 현재까지 30여건의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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