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이탄광 유해 DNA감정, 역사적 '진실'도 감정해야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의 신원 확인 위한 DNA 감정 추진

by 이영일
222367_224172_1516.jpg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3일 일본 나라현 정상회담장에서 공동언론발표 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조세이탄광(장생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 추진에 합의했다.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유족들과 시민단체는 환영의 입장을 표하고 있다.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란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란, 일제강점기인 1942년 2월 3일 아침 6시,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연안의 해저 탄광인 조세이 탄광에서 태평양 전쟁에 쓸 군수물자와 석탄을 조달하기 위해 무리하게 채굴을 하다 발생한 사고다. 조세인 탄광이라는 이름도 조선인이 많아 생긴 명칭이다.


당시 바다 밑으로 들어가는 갱도 입구 1.1 km 앞 지점에서 갱도의 천장이 붕괴하며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총 183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사고직후 탄광 회사가 갱도 입구를 폐쇄해 생존자들조차 모두 수장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일제는 해당 사고를 은폐했다. 조선인 희생자 기록이 문서에서 사라진 것.

222615_224438_131.jpg ▲1933년 8월, 조세이(張生)탄광. 일본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잊혀졌던 이 사고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1982년 4월 지역 주민들이 조세이 탄광 순난비를 건립하면서부터다. 이때도 이 순난비에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없고 '일본과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다'라는 내용이 있어 사실을 왜곡했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여하간 이것이 계기가 된 건 사실이다.


이후 1991년 1월,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의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 생겨나고 비슷한 시기에 조선인 희생자 명부도 발견된다. 한국의 유가족들에게 40년만에 사망 소식을 전달되면서 1992년에는 '조세이 탄광 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가 창립됐다.


2024년 9월 25일 오후 4시, 굳게 폐쇄·매몰되어있던 조세이 탄광의 갱도 입구가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조사 작업이 시작된다. 지난해 4월 1일, 한일 양국 잠수사가 함께 유골수습을 위한 조사작업을 벌였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222615_224437_5918.jpg ▲지난해 8월 26일 한일 민간단체 주도로 실시된 조세이 탄광 수몰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에서 관계자들이 해저에서 발견된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이후 드디어 8월 25일, 희생자 인골로 추정되는 뼈와 두개골이 발견되면서 조선인 강제동원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긴 역사가 있었기에 한일 정상의 DNA 감정 추진 합의는 바다 밑 갱도에서 억울하게 수몰된 조선인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첫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강제동원 인정 안하면서 피해자 유해 돌려주겠다는 다카이치 총리의 숨은 이면


그런데 자칫 이번 합의가 일본 정부의 면죄부가 되거나 한일 관계의 복잡한 실타래를 ‘인도적 조치’라는 명분으로 덮으려는 일회성 퍼포먼스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말과 행동이 다른 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 취임 이래 침략 전쟁을 자위권 행사라 강변하고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해 왔다. 강제동원의 불법성과 식민지배의 폭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서는 같이 드럼도 치고 손도 잡으며 피해자의 유해를 돌려주겠다고 하고 있는 셈이다.


222615_224435_5716.jpg ▲일본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사고 현장에 남아 있는 해저 갱도 환기구 '피야'. 일본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최근 이같은 한일 정상의 논의에 대해 “그들이 왜 그곳에 끌려갔으며 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대한 진상 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가 죄는 인정하지 않은 채 시신만 수습해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진정한 사죄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한 바 있다.


인도적 문제와 역사 정의는 결이 다른 얘기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일본 전역에는 조세이 탄광뿐만 아니라 수많은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해가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이번 DNA 감정 추진이 특정 사안에 국한된 예외적인 ‘외교적 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다음달 2월 7일에는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84주년 희생자 추모 집회가 일본 시민단체 주최로 우베시 내 추모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진정성 있는 일본의 태도를 기대하며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을 향해 끊임없이 투쟁해 온 유가족들과 한일 시민사회의 노력이 만들어낸 소중한 결실로 승화되길 기대해 본다.

https://www.ngo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22615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국립청소년수련원 '창원' 건립 속도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