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에도 울리는 업무 메시지"

1천명 설문 … 연락 받은 직장인 30.8% “밤 10시 이후 연락"

by 이영일

"병가를 냈는데도 회사 연락 확인은 할 수 있지 않냐고 하고, 반차인데 몇시부터 몇시까지 연락이 되지 않을 예정인지 명확히 보고하라고 하고, 명절에는 왜 연락이 되지 않느냐고 지적합니다"


"연차때마다 수시로 연락하고 퇴근 후에도 전화해서 업무 관련 문의를 합니다. 수술을 받아 아프다고 호소했는데도 마감이 급하니 링겔 맞고 와서 일해라, 노트북 가지고 집에서 일해라 라는 등의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관리자가 새벽에 근무 관련 사항 카톡을 여러개 보내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아침 일찍 보내기도 하고, 휴무인 날에도 보냅니다. 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d4a8c325-bced-42f1-8285-236d41ef0980.png ▲이영일 chatGpt

직장인 10명 중 6명 이상이 업무시간이 끝난 뒤에도 회사 연락을 받고 있으며 상당수는 밤늦은 시간까지 사실상 ‘보이지 않는 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2025년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최근 1년 동안 퇴근 이후나 주말·공휴일·휴가 중 업무 관련 연락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 66% "퇴근 이후나 주말·공휴일·휴가 중 업무 관련 연락 받은 경험 있다"


연락 빈도 역시 적지 않았다. 월 1~3회가 21.2%, 주 1~2회 20.6%, 연 1~10회 18.6%, 주 3회 이상도 5.6%에 달했다. 특히 업무시간 이후 연락을 받은 응답자 가운데 30.8%는 밤 10시 이후에도 연락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혀 사생활 시간까지 침범하는 업무 문화가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연락 상당수가 긴급 상황과 무관했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45.9%는 연락 이유가 회사 운영에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업무를 수행한 사례는 적지 않았다. 응답자 30.5%는 회사가 아닌 장소에서 즉시 업무 지시를 이행했다고 밝혔으며 연락에 응대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8.9%에 그쳤다. 사실상 ‘응답하지 않을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224782_226855_1340.png ▲업무시간 이후 업무 관련 연락 횟수. 직장갑질119


직장갑질119는 이 같은 결과가 포괄임금계약의 구조적 남용과 “퇴근 후에도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조직 문화가 결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노동시간이 끝났음에도 메시지와 전화가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노동자들은 문제 제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제보 사례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병가나 반차 중에도 연락 가능 시간을 보고하라는 요구를 받거나 명절과 휴가 중 업무 지시가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수술 후 회복 중인 노동자에게 “링겔 맞고 와서 일하라”거나 집에서 원격 근무를 요구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새벽 시간 관리자 메시지 때문에 수면을 방해받았다는 호소 역시 이어졌다.


직장갑질119 "기술 환경 변화에 맞춘 입법적 보호 시급하다”


이처럼 업무시간 외 연락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를 거부하는 순간 “협조하지 않는 직원”, “팀워크를 해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쉬워 노동자 개인이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디지털 메신저 환경은 압박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메시지 ‘읽음’ 표시나 온라인 상태 확인 기능이 일종의 감시 장치처럼 작동하면서 노동자들은 사실상 상시 대기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224782_226856_1450.png ▲연락 이유가 회사 운영에 시급한 문제 여부. 직장갑질119


직장갑질119 정소연 변호사는 “업무시간 외에도 대기 근무가 계속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기술 환경 변화에 맞춘 입법적 보호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책적 공백도 문제로 지적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현재 22대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 역시 계류 상태다.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추진되더라도 퇴근 후 이어지는 숨은 노동을 방치한다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업무시간 외 연락은 휴식권 침해를 넘어 무급 노동 강요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크다. 많은 사업장에서 해당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포괄임금제를 통해 추가 보상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80.5%가 업무시간 이후 업무 연락을 제한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미 현장의 인식은 제도 변화를 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직장갑질119는 “퇴근 이후까지 이어지는 공짜 노동을 끊지 못한다면 노동시간 단축도 삶의 질 개선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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