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지금, 안창호를 다시 소환하나"

3월 10일 안창호 선생 서거 82주기에 선생을 다시 소환합니다.

by 이영일

3월 10일은 평생을 조국 해방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끝내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서거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순국 8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평소 같으면 도산기념사업회와 흥사단이 공동으로 강남의 도산공원에서 추모식을 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때인지라 추모식도 취소가 된 상태입니다.


어제는 MBC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 28회에서 안창호 선생의 아픈 사진 3장이 소개되었습니다. 가슴 아픈 역사의 장소 서대문 형무소를 찾는 전현무와 유병재, 정유미등 연예인들은 김종민이 준비한 안창호 선생의 사진 3장 앞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사실 흥사단 단우이자 서울흥사단 사무처장 출신인 저는 이미 너무도 많이 본 사진들이었지만 그 사진들을 처음 본 사람들도 많은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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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 사진은 우리에게 익숙한 1919년 상해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때의 모습입니다. 가운데 사진은 일본의 중국 본토 침략 정책에 따라 독립운동 근거지의 건설 계획을 재검토 중인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 폭탄사건으로 이날 오후 피체되어 이후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있으실때의 수형기록카드 사진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5년후 1937년 6월 28일 동우회(同友會) 사건으로 흥사단 동지들과 함께 일제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를 때의 처참한 모습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발자취


도산 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농사를 짓는 가난한 선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세 청소년때 서재필이 주도하던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필대은과 함께 평양에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결성하였으며, 쾌재정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첫 연설을 함으로써 탁월한 웅변가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1902년 미국으로 간 안창호 선생은 1905년 공립협회을 창립합니다. 공립협회는 단기간에 600여명의 회원을 모을 정도로 힘있는 단체로 성장했고 1907년 국내로 다시 돌아와 비밀결사체인 신민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애국지사들의 구국운동을 뒤에서 총 지휘하는 지도자로 이미 성장했던 것입니다.


1909년, 안창호 선생은 국내 최초의 청년운동단체 청년학우회를 창설하는 등 전국민을 상대로 조직화 운동에 착수하던 중 안중근 의사 사건으로 서울 용산의 헌병대에 수감되었다가 2달 만에 석방됩니다.


1910년 한일합병이라는 역사적인 국치를 눈앞에 두고 해외 망명길에 오른 청년 안창호 선생은 북경, 상해, 블라디보스톡 등지에서 독립 조직화를 위해 애쓰다가 1911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12년에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여 이끌었고 1913년에 흥사단을 창립합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안창호 선생은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기초를 확립하고 국민대표회의를 여는 데 힘썼으며 한국독립당을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본격적인 반일 투쟁을 위해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결성하려고 노력하던 중 선생은 불행하게도 이듬해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국내로 끌려오게 되셨죠. 결국 국내에서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끝에 안창호 선생은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38년 3월 10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보고 싶은 그리운 지도자


안창호 선생은 말 그대로 오로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삶을 살으셨습니다. 60 평생 가운데 그 전반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두었으며 후반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싸움에 바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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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선생은 실제로 평생을 자신과 가정의 편안함을 돌볼 겨를도 없이 오로지 위기에 처한 나라와 겨레를 구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습니다. " 차례의 옥고를 치른 끝에 타계한 안창호 선생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앞장 서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준 진정한 애국적 지도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창호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8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안창호 선생의 애국심은 여전히 절절히 뜨겁습니다. 고리타분한 옛 역사의 한 인물이 아니라 아직도 살아 숨 쉬는 듯한 그의 나라사랑은 지금 어지러운 우리 시대, 헐뜯고 비난하기 바쁜 한심한 정치인들의 작태속에서 더욱 그리울 따름입니다.


코로나로 무거운 날들이지만 그래도 봄은 옵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사무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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