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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 탁구

탁구는 뭐? 공만 들어가면 되지

by 느곰씨 오만가치

점심과 저녁시간이 되면 탁구에 굶주린 이들의 탁구장으로 모여든다. 탁구에 진심인 부류와 그냥 여가를 즐기러 온 부류로 나뉜다. 그 속에는 또 탁구를 정식으로 배우고 있는 사람과 제멋대로 치는 사람으로 또 나뉘기도 한다. 문제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것이다.


점심을 부리나케 먹고 책상 서랍에서 탁구라켓을 꺼내든다. 나는 회사에서 '탁구에 진심'인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개인 장비를 갖추고 있다. 탁구장에서 더 이상 신지 않은 탁구화도 가져왔다. 인솔은 두툼한 녀석으로 바꿔 두기도 했다. 탁구장은 나무 바닥이지만 회사는 시멘트 바닥이기 때문이다. 내 무릎은 소중하다. 하지만 탁구 유니폼까지 입고 오는 사람에겐 열정 면에서 한 수 접을 수밖에 없다.


운동하기 편한 복장으로 탁구에 임하는 구장에서와 달리 회사는 일상복으로 친다. 그래서 움직임에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이 나는 건 탁구 '스타일'이다. 소위 배운 탁구를 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엉성한 폼으로 탁구를 치는 이를 만나면 당황스럽다. 구장에서도 조금 독특하게 치면 '사파 탁구'라고 불리는데 회사 탁구는 진정한 사파 탁구다. 오직 승리를 위해 만들어진 본능적인 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탁구장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슬리퍼와 끊임없이 파고드는 입담은 회사 탁구의 가장 어려운 점이다. 물론 공식 경기에서는 모두 반칙이다. 회사 탁구는 스포츠와 놀이 어느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회사 탁구장에만 가면 그들과 동급이 되고 만다. 아무래도 너무 익숙해져 인 것 같다. 탁구장 죽돌이들은 하나씩 자신들만의 장비를 갖추기 시작했고 어려워하던 공도 계속 주고받으니 익숙해진 것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손과 발이 알아서 간다. 그리고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과감함이 오히려 높은 성공률로 이이 지고 있다. 레슨 받기 전보다 되려 승률이 좋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사내 동호회를 결성했다. 수 년째 회사 사진 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는 나는 정식 회원이 될 순 없었지만 그들의 리그에 함께 했다. 그리고 내가 출장 간 어느 날 그들은 탁구 대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장렬히 전사하고 돌아왔다. 그들이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웃긴 말은


"탁구 그렇게 치시면 안 돼요"


였다. 그들은 고수들에게 박살 나고 왔다. 그래도 우리는 늘 즐겁게 쳤다. 자세가 어떠니 하는 문제는 각자가 해결할 일이었다. 그렇게 더 막강해진 사파 탁구를 이끌고 리그전에 참가했다. 그 사이 나도 사파에 물이 들었는지 중펜(중국식 펜홀더)으로 바꿨다. 탁구장에서는 대부분 세이크 핸드지만 우리는 세이크가 없다. 펜홀더 하나에 중펜 셋. 정말 특이한 조합이다.


이번에는 다들 제법 오르기 시작했다. 듣도 보도 못한 사파의 기술에 허를 내두르는 사람들이 생겼고 탁구인들은 그런 경기에 즐거워하며 지켜봤다. 진지함만 맴도는 탁구장에 함박웃음이 핀 거다. 중펜에 굶주린 중펜 사용자들도 아는 척도 해왔다. 역시 야생에선 실력으로 말하는 것이다. (승리를 따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입상을 하진 못했지만 탁구장에 즐거움 가득 안겨 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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