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한가한 시간에
퇴근을 하고 느지막이 탁구장에 들러면 늘 같은 얼굴만 만나게 된다. 이제 탁구에 재미를 붙인 두 분의 형님들과 매일 출근하시는 중국집 사장님,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가끔 들리시는고 문 님 그리고 드문드문 탁구장을 방문하시는 분들이다. 저녁에는 늘 아저씨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는 직장 생활하시느라 탁구장에 늦게 도착하시는 아주머니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남자들이다. 그리고 동호회가 해체되고 나선 그 수마저 줄었다. 9시가 넘어가면 탁구장에 혼자 있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다지 잘되는 탁구장은 아니다.
내가 다니는 탁구장은 세 개의 동호회가 있다고 들었지만 눈에 익은 사람의 수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남성 동호회야 해체를 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 동호회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게다가 지역 최강을 자랑한다고 들었다.
리그전에 잘 다니지 않기 때문에 만날 일이 없었다. 게다가 대회를 나가더라도 보통 여성부튼 토요일에 남성부는 일요일에 진행하기 때문에 도무지 만날 일이 없다. 가끔 응원차 오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 존재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회사를 석 달 정도 쉬게 되었다.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책 좀 읽고 운동하고 하원시키고 그러던 시절이었다. 그제야 탁구장이 운영될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녁에만 유독 사람이 없던 것이었다. (다른 탁구장에는 많던데) 오전에 가면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다. 실버 탁구 부대라고 불릴만하다. 건강을 위해 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담백하게 운동하시고 가신다. 늦은 오후부터는 아주머니들이 차지하고 계신다. 남편이나 아이들 때문에 집으로 복귀해야 해서 남자들이 탁구장에 들어가기 직전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제야 왜 이들을 만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탁구는 운동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 꽤 격렬한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나이 지긋한 분들도 탁구장에 나오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내 운동이기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할 수 있다. 여름에 에어컨 아끼고 겨울에 히터 아끼는 구두쇠 관장님이지만 그래도 치는데 불편함은 없다 (요즘 구두쇠처럼 굴면 탁구장 망한다)
남녀노소 하는 운동이지만 나이 분포는 그렇게 고르지 못하다. 보통 40 ~ 50대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을 잘 볼 수 없기도 하고 그들은 그들만의 그룹을 꾸려서 모이기 때문에 대회장에서나 만날 수 있다. 어르신 중에는 젠틀한 분들도 많지만 고집이 세고 가부장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젊은 사람들이 그 분위기에 잘 견디지 못하는 것도 큰 이유 중에 하나다.
설상가상으로 탁구는 꽤나 어려운 종목이라 레슨을 꾸준히 받아야 한다. 물론 동호회 사람끼리 즐겁게 치면 되지만 치다 보면 승부에 집착하게 된다. 레슨비는 구장 이용료까지 포함해서 16 ~ 20만 원선까지 분포되는 듯하고 지방으로 갈수록 저렴해지고 수도권으로 갈수록 비싸진다. 특히 국가대표 선수가 운영하는 탁구장의 관장 레슨은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 제대로 빠진 사람은 초등, 중등 선수들 합숙에 들어가기도 한다. )
게다가 용품 자체를 유지하는 것 또한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 블레이드의 경우 수명이 없다고 치더라도 (원래는 수명이 있다) 양쪽에 붙이는 러버는 매일 꾸준히 친다면 두 달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물론 치는 스타일 따라 다르지만 (어르신들은 6개월도 쓰신다) 보통 두 달이면 성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러버가 소비자 가격이 5만이 넘는다. (이벤트를 자주 하니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양쪽으로 하면 두 달에 십만 원 돈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성인도 부담스럽기 시작한다.
탁구공도 구비해야 한다. 탁구공은 잘 깨지기 때문에 보통 세 개 이상은 늘 가지고 다닌다. 신발의 바닥이 닳으면 바꿔줘야 한다. 미끄러지면 부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니폼이야 그냥 트레이닝 복을 입어도 되지만 동호회 활동이라도 한다고 하면 팀 복장도 갖춰야 한다.
이쯤이면 젊은 나이에 탁구를 배우는 친구들이 대단해 보인다.
카페 활동을 하면서 출장지의 탁구장에 들러는 일이 많아졌다. 그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울에 몇 곳은 젊은 친구들만 모여서 치는 곳이 있기는 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또래끼리 쳐야 재밌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라도 관심에 남아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