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은 선수인데 말이에요
탁구장을 몇 달 다닌 뒤 관장님은 나에게 대회에 출전하라고 하셨다. 동호회도 해체되다시피 해서 인원을 채우기도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대회 경험을 하면 실력도 늘게 된다는 것이었다. 요즘에야 6부, 7부도 있지만 당시에는 5부가 가장 낮은 부수여서 5부로 출전하게 되었다.
대회 전에는 실전 게임을 많이 해봐야 하는데, 저녁에 오는 사람들이 줄어서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지내야 해서 토요일 따로 특훈도 하지 못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탁구장에서 헛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대회는 우리 지역이 아니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곳에서 열렸다. 전국 대회여서 (전국 대회라는 명칭에 무색하게 근처에서만 모였다) 해당 지역이 아니라도 출전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이 가깝지는 않아서 아침 일찍 움직였다. 차를 몰고 중국집 사장님을 만나기로 한 곳에 도착했다. 얼마 있지 않아 사장님이 타셨고 우리는 그렇게 대회에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도착한 체육관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지 새 건물이었다. 주차장도 널찍해서 주차하는데 불편함도 없었다. 첫 대회의 기대감을 품고 입구를 찾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빨리 건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기도 했다. 서둘러 체육관으로 들어서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탁구를 치며 몸을 풀고 있다. 날씨가 추워 몸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미 자리는 꽉 차 있었다. 중국집 사장님과 나는 어쩔 수 없이 벤치를 찾아 앉았다.
체육관 안이라도 히터를 틀어주지 않아 추웠다. 선수권 대회 할 때는 선수 부상 때문인지 스폰서가 좋아서 인지 정말 따뜻하게 해 놓더니 생활 체육이라고 히터도 틀지 않을 것 같다. 관장님께 듣기로는 한 시간에 나오는 전기 요금이 엄청나다고 했다. 그래서 생활 체육 대회는 봄과 가을이 가장 많다고 했다. 그래도 이건 추워도 너무 추웠다. 자리도 없어 땀도 못 내는데...
사장님이 비는 자리에 빠르게 맡으시곤 나를 불렀다. 몸을 풀자는 얘기다. 손가락마저 시려서 몸을 푸는 동안에도 손에 입김을 불어 녹여야 했다. 얼마 연습하지도 못했는데 시작해야 한다며 연습을 중단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사장님과 나는 아쉽게도 자리에서 나왔지만 끝까지 연습하는 사람들도 있다. 운영 위원회도 짜증이 나는지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이름이 호명되어 상대를 만났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포핸드 롱으로 시작해서 여러 가지 연습을 하는 게 보통이라 그렇게 연습을 시작했다. 상대가 볼의 속도를 점점 올리길래 그대로 받아줬다. 게임은 몰라도 이런 연습은 밀릴 리가 없다. 게다가 배운 티가 나는 자세라서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거린다.
"와아. 이쪽 장난 아닌데"
"여기도 만만치 않아"
순간 우쭐함이 생긴다. 내가 그렇게 잘 치나? 사실 내 자세는 선수 출신 후배도 인정했던 자세가 아닌가. 경쾌한 스텝과 부드러운 스윙만 보면 고수가 따로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꽤나 긴장 중이다. 첫 대회이기도 하고 원래 긴장을 잘하는 타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임을 시작했다. 구장을 떠나 처음 탁구를 치는 넓은 공간이다. 공간이 넓으면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량이 많아져 공이 되게 느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공간감이 달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게 사람들의 조언이었다. 역시 서비스하려 공을 던졌는데 순간 멍해졌다. 공이 흩날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실수를 했다.
긴장에 실수를 연발하자 점수 차가 빠르게 벌어졌다. 두 번째 세트가 끝나갈 무렵부터 적응이 되었지만 상대 실력도 만만치 않아서 크게 힘써보지 못하고 게임을 내어줬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해서 연습 게임이라도 해봤다면 더 잘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나머지 두 명 또한 잘 쳤다. 그중 한 명은 그날의 입상자이기도 했다. 빠르게 예선 탈락한 뒤 다른 사람들의 경기를 구경하러 다녔다. 특히 선수 출신들이 참가하는 1부 게임은 정말 멋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수비수였다. 넓은 공간을 사용하며 상대의 공격을 다 막아내고 찬스에 역공하며 득점하는 모습이 너무 짜릿했다. (나도 수비수 하고 싶다. 저분은 어느 탁구장에 계시지)
동호회가 해체되고 급히 만들어진 동호회라 입상을 한 사람은 없었다. 다들 빠르게 탈락하고 집으로 향했다. 대회 참가라는 경험도 할 수 있었고 좋은 구경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수비수라는 단어가 머리에 맴돌게 된 부작용도 있었다.
수비수란 거 정말 멋지구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