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협회 일 안 하나
탁구라는 종목은 실력에 따라 '부수'라는 것이 존재한다. 내가 탁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탁구 인구가 그렇게까지 많지 않아서 5부가 가장 낮은 부수였다. 지금은 7부도 존재한다. 실력이 높아질수록 부수는 4, 3, 2, 1로 줄어든다. 물론 -1, -2 도 존재하기도 한다. 선수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다.
탁구는 선수 출신들이 생활 체육대회에 나온다. 언제까지 선수를 했냐에 따라 초선, 중선, 대선 이렇게 나뉘고 이들은 일정 부수 이상에서 쳐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며 수강생을 모집하는 영업의 한 종류이기도 하지만 실력이 높을수록 상금이 높기 때문에 그것을 노리기도 한다. (사실 참가자가 가장 많은 부수가 상금이 가장 많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이들이 생활 체육에 들어오면서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한다. 아마추어 생활 체육인들이 부수를 올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승급 순위에 들어가지 전에 일부러 지며 실력과 무관한 부수를 유지한다. (단체전과 동네 리그전에서 상금을 받기 위함이다. 때문에 리그전에서 자체 부수를 운영하기도 한다) 테니스처럼 스승과 제자가 한 팀을 이루는 복식 이외 코치는 출전하지 않아야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협회가 생활 체육도 관리하고 있다. 그들은 레이팅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의 래더 포인트처럼 자신만의 포인트가 있고 시합도 레이팅 구간별로 진행한다. 낮은 레이팅 선수가 높은 레이팅 선수를 이기면 점수를 많이 획득할 수 있다. 자신의 점수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일부러 지는 짓은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수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핸디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1 부수 차이가 나면 2점을 얻고 시작한다. 더 차이 나면 부수 당 1점을 더해 간다. 보통 최대 6점 핸디까지 허용한다. 11점 경기에 6점 핸디면 고수가 얼마나 부담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게 될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최대한 안정적으로 플레이하거나 서비스로 득점하려 한다. 때문에 경기가 재미없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나라도 핸디 제도를 없애고 레이팅 제도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체 레이팅을 시작했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이 전국적으로 공평해질 거다. 그래도 사이트까지 운영하며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부수 제도가 빠른 시일 내에 사라질 것 같진 않다. 스피드 글루도 반칙 서비스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허용되는 탁구판에서 기존 제도가 쉽게 바뀔 것 같진 않다. 젊은이들이 적응해서 늙은이가 될 때까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레이팅이 적용되는 것보다 현재 부수 제도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핸디를 주는 방식은 탁구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접바둑이다. 아니면 다른 레벨과 시합을 하지 않도록 만들 수도 있다. 수영은 나이 별로 나눠 경기를 하고 마라톤은 거리 별로 차등한다. 생활 체육의 중요한 점은 수준에 맞게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탁구라는 운동은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다. 순전히 취미로 1부에 간다는 건 존경을 넘어 거의 미친 듯 탁구를 친 것과 다름없다. 지금도 1부 아마추어들은 "예선 통과하면 탈락은 정해져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선출만 따로 경기하기엔 그들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부수 제도가 문제가 될 건 없다. 단지 우승과 상금의 문제 때문에 승리에 집착하게 된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부수는 그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부수라는 제도가 있어서 고수와 공을 섞을 수 있는 기대를 가져 본다. 거기에 승리가 의미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짜릿함은 있을 거다.
제도는 완벽할 수 없고 문제는 늘 그 속의 사람들이 만들어 낸다. 그냥 조금 더 즐기면 좋지 않을까. 나는 그냥 탁구라도 실컷 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