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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May 17. 2024

출장 포비아

출장 자체가 이미 스트레스야.

  코로나 이후 중국 투자가 시큰둥하다.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로 추가적인 투자가 적은 것도 사실이지만 중국도 국산화 비중을 빠르게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유럽 시장에 진출한 아이템 덕분에 유럽 출장이 생기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인 듯하다.


  개인적인 성향이 구석에서 연구하는 스타일이라 움직이는 것 자체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거기에 더해 과민성 대장이라 움직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이동 수단은 화장실이 구비된 기차나 비행기가 아니면 불안하다. 그래서 이동하는 전날은 늘 금식이다. 화장실 급해질까 물도 마시지 않는 편이다. 국내 출장도 꼭 개인 차량을 타고 간다. 신호가 오면 바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출장을 꺼리는 이유는 출장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어서 인 듯하다. 모든 것을 떠나 그냥 움직이는 것이 싫은 건지도..


  오랜만에 긴 시간을 출장 없이 지내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려면 않을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출장 가지 않기 위해 그런 아이템을 빠르게 선택하고 덤벼들었다. 먼저 하는 일이 있는 자에게 완전 다른 일을 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람이 많이 줄어서일까 아니면 배수의 진을 치는 기분일까 전원 미국행 비자를 준비하라고 한다(지금은 미국 비자가 잘 나오질 않는다).. 나는 메일을 가볍게 지웠다. 출장을 고려하면 회사를 다니는 것이 프리랜서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쓰나미가 발 끝에 닿으려고 하고 있다.


  회사가 중국에 진출한 이후로 해외 출장이 잦아졌다. 국내 투자는 줄고 해외 투자가 늘었다. 게다가 한국 회사들마저도 중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제는 베트남이다. 그리고 유럽, 미국이다. 출장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집 떠나고 싶지 않은 나는 괜히 걱정스럽다.


  해외 출장은 반갑지 않은 일이다. 일단 출장 자체가 힘들다. 출장지에서의 업무 강도가 꽤나 높기 때문이다.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쉰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출장이다. 그리고 장기 출장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향수병을 넘어 가족과의 불화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모르는 말과 낯썬 음식에도 적응해야 한다. 게다가 출장비마저 실비로 바뀌었다. 여러모로 출장은 반갑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국내 출장은 갈만 하다. 일단 장기 출장이 많지 않고 집에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건 마음의 짐을 조금을 들어줄 수 있다. 귀국하지 못해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못 보고 부모님 돌아가시는 것도 못 본 친구들도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를 받을 일은 없겠지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바로 달려갈 수 없는 상황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퇴사하는 인원이 많아져서 제품을 만드는데 인원이 모자랐다. 나의 일은 아니었지만 예전에 해봤다는 이유로 그 일을 하게 되었다(맡으면 내 일이 되는 마법). 출장은 절대 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주말도 반납해 가며 만들었다. 고객 검수에 겨우 맞춰 완성을 해내고 나니 그 일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포장을 한다고 손을 떼는 순간 번아웃 되었다.


  납품하고도 몇 가지 이슈는 있었다. 현장에서 투입된 인원이 있었지만 고객은 썩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들어보니 큰 문제도 아닌데 말이다. 질려버린 업무는 아무리 정신을 쏟아도 머릿속에 잘 잡히지 않는다. 고객이 나를 찾았지만 몸이 아파서 못 간다 했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쌓여 그런지 장이 유독 더 예민해져 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 번은 가봐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순간에는 내 일도 아닌 것을 그 정도까지 해줬으면 알아서 마무리해야지라며 짜증이 먼저 몰려왔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잡힌 감자칩에 겨우 안정을 찾았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얼굴이 안 좋다고 무슨 일 있냐며 물어본다.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얼굴이 그렇게 쉽게 펴지지는 않았을 거다. 몇 분 뒤에 아내에게 회사 일을 얘기하니 평소에는 출장 간다 하면 표정이 안 좋아지던 아내도 오늘은 그냥 다독여 준다.


  출장비가 사라지는 바람에 그동안 꾸역꾸역 다니던 직원들 다수가 회사를 관뒀다. 그중 대부분은 현장을 책임지던 사람들이었다. 현장에서의 손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 그 사람들이 또 퇴사를 한 것이다. 관련 팀들의 업무는 엉망이 되었고 대책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래도 회사에 화가 났던 것 같다.


  결국 이지경이 되어 내가 할 일도 아닌대도 특근에 야근을 해야 했던 억울함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 뭘 해야 하는 걸까? 그런 고민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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