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과 함께한 사진
"시간 좀 돼요?"
김 부장이 회사 메신저로 톡을 보내왔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그러저럭"
김 부장은 같은 동호회로 지금은 회장을 맡고 있다. 내가 7, 8년 전에 잠깐의 퇴사로 넘겨줬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전히 내가 하고 있을 거다.
"요즘 갑자기 연락 오고 그러면 무서운데.."
"하하"
부정하지 않는 웃음. 긍정이겠지. 하지만 본론은 뒤로 한채 동호회 회비를 결산하자는 얘기였다. 회사에서 동호회 지원이 끊어진 지도 수 년째. 그동안 모은 회비로 유령이나 다름없는 회원들 옷이나 장갑을 선물로 사주곤 했다. 하지만 이젠 활동자체가 없기도 하고 회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나와 김 부장뿐이다. 그래서 불쑥 이런 얘길 하는 건 역시 정리하는 거겠지 싶다.
"이제 다들 퇴사해서 우리 둘만 남았네요"
"그럼 n빵 할까요? 어차피 사업장도 달라서 회식도 못할 텐데.."
"그래요. 좋네. 각자 맛있는 거 사 먹기로 합시다. 퇴사한 박 부장 불러 다음에 맛난 거 먹고 하면 되겠네"
"제가 근처 가면 연락 한번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십 수년의 동호회를 마무리했다.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통장도 깔끔히 정리했다.
내가 입사했을 때, 회사에는 사내 동호회를 만드려고 한참이었다. 나는 인라인 동호회를 찾아봤지만 즐기는 사람의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탁구 동호회는 한참 뒤에나 생겼고 배드민턴 동호회는 금방 흐지부지 해졌다. 그리고 나는 사진 동호회에 안착했다. 그땐 사진이 한참 붐이기도 했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사내 동호회를 넘어서 회사 외부에서도 사진 동호회를 이어 나갔다. 촬영회에도 따라다녀 봤다. 사진이란 참 멋있으면서도 재밌었다. 카메라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기계였다.
사진 동호회는 좋은 점이 많았다. 인원수가 맞질 않아도 활동이 가능했다. 사진은 개인의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혼자 찍으면 그대로 좋고 같이 나가도 좋았다. 사진 동호회의 주축은 4, 5명이었고 나머지는 자리를 채우고 있는 유령회원이었다. 그리고 사진 동호회는 활동 사진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동호회였다.
사진 동호회가 회사의 특혜를 받는 이유는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각종 행사 사진은 물론 제품 사진, 임원 워크숍까지 참석했다. 게다가 회사 사원증 촬영 같은 일도 도맡아 했다. 회사에서는 꽤나 큰 지출을 아낄 수 있었다.
다들 결혼하지 않은 자유로운 몸일 때 우리는 전국을 누볐다. 전북 임실의 옥정호라든지 경북 청송의 주산지를 밤을 새우며 달렸다. 새벽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덮인 풍경을 찍고 싶다는 이유였다. 서울의 성산대교나 응봉산 야경에 도전하기도 했다. 금액을 모아 스튜디오 촬영도 진행했다(아쉽게도 나는 늘 개인 일정으로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개인 출사로 만족했다). 스튜디오 촬영은 조금 특별한 경험(모델이 아름답든지)이라 유령 회원들도 제법 참가했다.
사진을 많이 찍으러 다녀서 계절 별로 가야 하는 곳을 외우게 되었다. 덕분에 연애할 때 그렇게 고민 없이 장소를 선정할 수 있었다. 도심보다 야외 데이트를 좋아했다. 지금처럼 카메라가 좋지 못한 시절이라. 백통(하얀 고가 렌즈)과 DSLR 그리고 묵직한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좋은 사진을 많이 남겼다. 물론 데이트 나온 다른 남성들의 구박에 이유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이제 다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어 출사를 계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보다 모음 자체가 어렵다. 한 분은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고 에이스는 아버지 펜션을 물려받아 강원도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나도 아빠 사진사 노릇하는 것이 전부다. 다들 동영상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사진이 주는 감동이 좋다.
최근에 작은 카메라를 하나 사서 스냅숏이라고 찍어 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핸드폰 카메라가 너무 좋아 '굳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사진은 결과물 그 자체보다 찍는 과정이 즐거운 일인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좋은 사진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몇 번을 다시 찾아야 하기도 한다. 찰나의 예술은 결국 부지런함과 운이다.
예전에 찍어둔 사진을 보면 손이 근질근질할 때가 있다. 지나간 추억은 또렷한 동영상보다 더 많은 행복을 준다. 기억은 늘 왜곡되어 있으니까.
추억은 기억의 미화다.
그런 찰나를 즐기는 시간을 다시 기대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