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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May 19. 2024

칭찬받기도 실력이야

우리 가족 빵~ 터진 날

  딸이 초등학교 때. 수학이 약한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께 심화 문제집을 얻어오기도 해서 같이 풀기로 했다. 어릴 때 아빠 욕심이 어려운 문제집을 억지로 시켰는데 그게 잘못된 방법이었다. 내 딸이라 당연히 수학을 잘할 줄 알았는데, 역시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 오히려 영어를 더 잘하니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그래서 그 뒤로는 어렵지 않은 것들로 한교 진도에 맞춰 스스로 하라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께 받아온 문제집이 쉽지 않다.


 "넌 그냥 옆에서 아빠가 푸는 것만 봐"


  그렇게 시작했다. 수학은 고민이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시험이라는 건 누가 푸는 법을 더 많이 알고 있는지의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학자를 목표를 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아빠 푸는 것만 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얘기해 가며 풀었다. 셈하는 속도야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기특한 게 내가 풀어 틀린 건 자신이 오답노트를 만든다(오답 노트는 내가 해야 할 거 같은데..).


  "아빠~ 이거 틀리면 어떡해?"라고 농담을 하면,

  "앞으론 더 많이 틀려야겠네~"라며 농담으로 받아친다.


  그렇게 문제집 한 권을 끝내곤 다시 평소 모드로 돌아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하기로 했으니까 더 이상 입대지 않을 생각이다.


  "자기, 이거 봤어? 정말 웃겨"


  퇴근하고 거실로 들어서는 나를 맞으며 아내가 다짜고짜 말을 건다. "뭐?"라며 초롱초롱한 눈에 답을 한다. 딸이 학교에서 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일정량이 채워지면 집으로 보내준다. 그 속에는 <칭찬일지>가 있다. 가족을 칭찬하고 느낌을 적는 숙제였다. 평소 대화와 그렇게 다르지 않아서 칭찬인지 아닌지 아리송하지만 제 딴에는 칭찬이라고 열심히 했나 보다.



  엄마 칭찬 일지에는 귀여움이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부는 이런 부분에서 꽤나 장난이 심한 듯하다.


  "엄마, 라탄 진짜 잘 짰다!"라는 말에 "저게 더 잘 짰는데.."라고 대답하고,

  "아빠, 자로 그은 거 같아!"라는 말에 "거짓말하고 있네~"라고 대답한다(물결은 정확한 억양이다).


  그날이 생각나서 보자마자 빵 터져 버렸다. 아니 이런 걸 학교 숙제로 냈다니 선생님도 빵 터졌을 것 같다.

  빵 터져 버린 아빠를 보며 딸도 빵 터져 버린다.


  "그러게, 칭찬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라고 또 장난을 친다.


  아직까지 아빠를 좋아해 주는 딸이라 고맙다. 사춘기 땐 좀 거리를 두고 지낼 생각을 하라는데 이 녀석은 어릴 때 시크하더니 사춘기 나이가 되어갈수록 더 엉겨 붙는다. 그래도 이런 아이가 있다는 게 참 좋다.


  행복이 별거 있나. 이런 게 행복이지.


  근데 나. 회사에서도 저렇게 반응하는 건가? 갑자기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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