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던 그 사람은 왜 흑화 했는가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같은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여러 가지를 알아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일 잘하던 사람들이 승진을 거듭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그 안에 나도 포함될 수도 있다. 원래 자기 허물은 눈치채기가 어렵다). 왜 그럴까를 계속 고민하다 보니 나만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흑화는 팀장이 되면서부터다. 드라마에서 보는 팀장들은 카리스마 있고 능력도 좋다. 마치 준비된 리더 같다. 물론 그 반대의 팀장들도 등장한다. 팀장은 왜 흑화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내가 같은 위치에 있기에).
팀장은 커리어 단절의 위협을 처음 겪는 위치다. 우리나라는 관리를 전문 분야로 보지 않는 나라로 어떤 일을 하든 일정 커리어가 쌓이면 팀장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 팀장이라는 업무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스킬이 필요하다. 고작 며칠의 교육으로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자신의 커리어로 승승장구하던 사람은 새로운 스킬의 문턱에 딱 걸린다. 자신의 커리어가 관리라는 업무와 관련이 없을수록 문제는 심각해진다.
빠른 선택이 필요하다.
커리어를 유지할 것인가? 커리어를 갈아탈 것인가?
일단 관리직으로의 전환을 선택했다면 기존 커리어를 잃는 속도는 빨라진다. 그리고 회사가 그다지 큰 회사가 아니라면 그 속에서 익힌 관리 기술로 뭔가를 하기란 쉽지 않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 경로는 같은 회사 임원 외길이 된다.
두 번째 흑화는 임원 승진인 듯하다. 임원은 이미 자신의 커리어를 대부분 소진한 상태다. 악착같이 지켜낸 사람들도 있겠지만 임원쯤 되면 게을러지거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이들 사이의 목소리의 크기는 배경일 수도 있고 자신의 조직의 성과의 크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 안에서만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대기업 임원이 중소기업의 임원이나 대표로 가는 경우는 있지만 중소기업 임원이 어딘가를 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임원은 인사권자에게 충성한다.
직원들은 말도 안 되는 일에 충성하는 임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겉으로는 근엄해 보이지만 인사권자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진다. 그리고 그들은 계약직이다. 주주 총회에서 연장되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갈 수 있는 길은 점점 좁아진다. 인사권자가 지속적으로 미션을 내리고 성과를 강요하지 않으면 그들은 매 흉내를 내는 비둘기가 되고 만다. 인사권자가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숫자놀음하기 바쁘다.
내가 보기에 회사에서의 '흑화'는 자신의 능력을 잃어버려 생긴 불안감인 것 같다. 어디서든 나를 원할 거라는 생각은 불합리한 지시에 의견 정도를 낼 수 있게 만들 텐데, 대부분 그저 입을 다물고 만다. 그렇게 능력 있던 직원은 흑화된 직원이 되고 만다.
모두가 인사권자의 비위만을 맞추려고 하면 (탁월한 리더가 없는) 회사는 방향성을 잃는다. 그리고 그런 기업이 잘 될 리가 없다. 안타까운 것은 회사를 오래 다니면 흑화를 피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흑화를 피하려다 리더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거나 승진이 좌절될 수도 있다. 승진을 노리다 보면 결국 커리어가 단절되고 만다.
결국 깨어 있는 보스 한 명에 의해 회사의 존망이 결정된다.
안타깝게도 충신이 설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