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도 의지가 필요하다.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처음 와보는 낯선 동네, 낯선 공간. 한 여성을 따라 연구소장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는 방 앞에 섰다.
"들어가시면 돼요. 잘하세요"
또래처럼 보이는 여성은 의례적인 인사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을 하곤 웃어 보였다.
대학원에서 동거동락하던 선배가 먼저 입사한 회사다. 전문연구요원 TO가 생겼다며 별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알아보라고 했던 것도 선배다.
여유를 부리며 써내려 간 이력서.
자기소개인지 가족 소개인지 모를 자소서.
어떻게 서류 전형을 통과했는지 모를 일이다. 갑작스레 받은 연락에 사실 아무런 준비 없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처음 와보는 동네. 멀지 않겠거니 하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무턱대고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사는 과속 단속이 많아졌다는 둥의 불평을 하고 있었다. 택시가 나를 내려준 곳은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시골 옆 작은 공단이었다.
"우선.. 자기소개해 보세요"
"아.. 저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질 않을 만큼 즉흥적이었다. 횡설수설하다가 말이 멈춰버렸다. 다음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 연구소장이라는 분은 가벼운 한숨을 쉬곤 질문을 이어 갔다.
"대학원 학점이 좋네요?"
"그건.. 교수님이 잘 주셔서 그렇습니다."
꽤 진지한 답변이었는데 농담으로 생각했는지 연구소장은 웃는다. 노예처럼 대학원생을 부려 먹었던 3층 교수에 비하면 우리 교수는 천사였다. 페이퍼 교수라고 했던가. 담당 교수는 철저하게 논문만 썼다. 그래서 해줄 건 없다며 조기졸업이라도 하라며 늘 좋은 학점을 줬다. 그래서 대학원 학점은 거의 다 A+였고 조기졸업을 하게 되었다.
"누나와 형이 모두 의사네요? 본인은 의대 갈 생각은 안 했어요?"
"저는 사람 만지는 것보다 기계 만지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길지 않은 면접이었다. 몇 분을 위해 그 먼 길을 왔나 싶었다. 아직은 간절함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허무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잘했다고도 할 수 없던 면접이었다. 그래서 기대도 없었다. 그저 논문을 다듬고 마무리할 생각만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뒤 갑자기 연락이 왔다.
"혹시 2월 1일부터 출근이 가능하실까요?"
"아.. 네.. 가능합니다"
회사에 꼭 들어가고 싶다는 절실함 보다 구직 활동의 귀찮음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안일함이 먼저 발동한 대답이었다. 그렇게 생각도 없이 사회로 나왔다.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고 더 나은 선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귀차니즘을 포함해서). 나에게 속도는 생명이었으니까.
남들보다 한 살 먼저 입학한 초등학교. 망쳐 버린 수능에도 재수는 없었다. 그냥 최단 거리로 사회에 나가고 싶었다. 뭐가 닥쳐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 때 좀 못한 공부 사회에서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뽑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한 달이나 지나 합격 통보라니 이상했다. 확신을 줄 수 없는 면접이었다. 기계를 좋아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을까. 형제가 공부를 잘하는 게 영향을 미쳤을까. 아니면 선배가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을까. 알 수 없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을까. 그 정도로 별로인 회사는 아니었을까. 그런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없을 만큼 순수했거나 게을렀다.
어지간하면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동네에 눈이 왔다. 그리고 나는 예정된 출근보다 하루 일찍 짐을 쌌다.
"여기가 근무하실 곳이고 이 분은 팀장님이세요"
이미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여성은 여전히 친절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투적인 말로 나를 맞았다. 직급이 낮은 사람과 대화할수록 편했고 뭔가 통하는 것이 있었다. 한 해 일찍 입사한 선배는 친절한 사람이었고 회사 여기저기를 안내해 줬다.
"주문한 노트북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 일단 이거 쓰고 있어"
자리에 돌아와 보니 골동품 같은 노트북이 올려져 있다. 부팅하는데도 한나절이다. 분주히 인사를 다니던 뻣뻣하고 낯선 시간이 모두 지났다. 골동품 노트북의 느긋함도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어색함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원래도 혼자 뭔가를 하길 좋아해서 그렇게 불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미리 사둔 코딩 책을 펼치고 노트북을 쳐다본다. 노트북 로그인 화면에 연구소장의 이니셜이 있다.
'하아.. 도대체 언제 적 물건인거지'
노트북이 느린 만큼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그렇게 회사는 나의 새로운 터전이 되었다.
석사라 그랬는지 문서 정리 잘하게 생겨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맡게 된 프로젝트는 '국책'이었다. 사실상 실패를 상정해 둔 아이템이었고 국가에 제출할 문서를 정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마무리는 깔끔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은 '패전 마무리'라고 불렀다. 갓 입사한 나에게 부담 없는 프로젝트였고 경험할 게 많은 프로젝트였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던 설비는 고작 마이크로 마우스나 만지던 나에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모든 것에 적응해 갔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새로운 CEO가 오고 나서다.
새로 온 CEO는 자신의 실적으로 내가 하던 프로젝트를 지목했다. 회사에서 가장 많이 진척된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수라는 사람은 사람을 충원해주지 않는다며 이미 퇴사를 한 뒤였다. 팀원은 4명에서 12명으로 늘었고 팀은 TFT가 되었다. 패전 마무리에서 특급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사수의 자리 또한 내가 메워야 했다.
2년 차 사원에게 맡겨진 메인 업무. 어쩌면 그건 행운이었다. 샘플 세 장만 투입하면 문제가 생기던 설비는 '세장만 설비'라는 조롱을 들었다. 데모도 여러 번 실패했다. 하지만 결국엔 조건부 수주를 받아냈다. 밤낮을 교대해 가며 고객사를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나에게 여러 영광을 안겨줬다.
'속도'는 모든 일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았고 잘한 것과 조금 못한 일 정도로 느끼게 해 줬다. 포기하지 않은 모든 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삶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