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인정하는 건 머리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꼬박 하루 반을 물도 마시지 못했다. 양치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지만 장의 회복과 영양을 책임질 경장식은 여간 맛이 없었다. 보건소에서 주는 엘리멘탈(무향)은 바로 아웃되었다. 그리고 엔커버라는 물건을 받았다. 바닐라 맛이 났다.
"우리 아들, 잘 먹고 있다며?"
"응! 커피 향이 나"
감사하게도 잘 먹었단다. 아빠 커피 원두를 갈아주던 아들이어서 커피 향을 좋아한다(마시진 못하지만). 그렇게 잘 넘기나 싶었는데 설날 연휴 동안 품절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입맛에 맞는 것을 못 찾았다. 그리고 바닐라라는 것이 계속 먹으면 지겨운 맛이기도 했다. 잘 먹어야 하는데 잘 못 먹으니 엄마의 스트레스도 폭발한다. 일주일 만에 연습하고 퇴원해야 하는데 엄마의 마음이 초조하다.
"오늘 반 포 밖에 못 먹었어. 다섯 포를 먹어야 한다는데.."
얼마나 맛이 없으면 그럴까 싶을까 싶다가도 "배가 덜 고파서 그래"라며 맞장구를 쳐준다. 아들 케어만큼이나 엄마 케어도 중요하다.
"지도 얼마나 먹기 싫겠어. 옆에 있는 나도 냄새로 물리는데..."
한참을 쏟아낸 아내가 결국엔 인정의 말을 꺼낸다. 먹어라고 사정도 해보고 강요도 해봤지만 먹는 당사자가 못 먹겠다는데 어쩔까. 카페에 어떤 아이는 '이것만 먹어야 하면 죽어버릴 거야'라고 엄마랑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장기전에 될 텐데 언제까지 서로 힘만 뺄 순 없었다.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만들어야 했다.
엄마는 참 강하다. 아직은 링거를 달고 있기 때문에 영양에는 문제가 없을 거다. 아이가 먹고 싶지 않다면 주질 않았다. 잘 먹지 못한 아이는 힘이 없다.
설 명절이 지나고 담당 교수님이 출근하셨다.
"어디 보자. 잘하고 있었어? 철분제 못 먹어서 속상했어? 선생님이 가루약으로 줄까?"
라며 아들을 달래곤 다시 현실을 얘기해 주셨다.
"우리 이렇게 울고 있을 시간이 없어. 이제는 먹어야 해. 우유맛 좋아해? 선생님이 우유맛으로 사다 줄까?"
엄마는 지금 엘리멘탈(오렌지맛)을 먹고 있다고 했다.
"그래 열심히 먹어서 퇴원해야지. 오늘 2포만 먹자. 내일은 2포 반 그리고 3포 먹으면 퇴원하자. 알았지?"
교수님은 남자신데도 아이를 참 달래신다(우리 아이들은 전문가의 의견을 맹신하는 경향도 있다). 공감도 해주면서 단호해야 할 땐 단호하게 말하며 목표까지 제시한다. 나도 그래야 하는데. 많은 것을 배운다. 교수님은 아이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잘 이해하고 있으신 듯했다. 그리고 아이도 교수님께 칭찬 들으려고 열심히 먹겠다고 다짐한다.
"맛있는 거 먹고 싶어? 그래~ 그거 먹으려고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거잖아"
"갈비? 아.. 아 그건 좀 오래 걸리겠다..."
꿈속에서 탕수육이랑 짜장면을 꿈을 꿨다는 아들은 조금 울었다. 아내는 아들이 잠꼬대까지 했다고 했다. 지나서 들은 나는 귀여우면서도 짠했다.
"시원하게 먹으면 괜찮데. 빨대로 먹는 방법도 있고.."
여러 방법을 알아가고 연습하게 된다. 드디어 3포를 먹게 된 아이는 퇴원을 해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도 아빠도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