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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l 11. 2024

우연한 보상

안정감 있는 조직은 강하다

  "도와 드릴까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일이 그렇게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며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공장 어느 한편에서 같은 팀이지만 다른 업무를 보고 있는 선배가 일을 홀로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도우기로 했다. 그도 처음 받아보는 후배라 잘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잘하네. 그렇게 하면 돼. 프로그램 짜는 사람도 조립도 해보고 하면 도움이 되고 좋지"

 "재밌긴 하네요"


  어려서부터 만들기가 좋았다. 여러 모양의 가공품을 합치는 작업은 어릴 때 과학상자를 하는 기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았던 회사 생활에 익숙한 부분이 하나 더 늘기도 했고 친분도 쌓았다.


 "여기 올라와서 이것 좀 잡아줘"


  커다란 장비 위에 올라서니 공장 내부가 훤히 보인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람들 사이로 나의 사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곤 말을 걸었다.


 "그기서 뭐 하고 있어?"

 "도와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내려와 봐 봐"


  사수는 공장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며 설명해 줬다.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한 바퀴를 뺑 돌아서 처음의 자리로 왔다. 사수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여러 기능을 설명했다.


 "이건 장비를 돌려주는 프로그램이야. 이것 하나하나가 동작이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정리되지 않은 부분은 정리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카메라 영상을 보여주는 곳이고..."

  카메라, 영상이라는 단어에 귀가 쫑긋해졌다. 그건 내 전공이었기 때문이다.

 "너 영상처리 전공이지? 그럼 이거 만들어 볼래?"

 "네에"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어 좋았다. 하나하나 만들어 썼던 학교와는 달리 잘 만들어진 제품을 사서 쓰는 형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때 보다 훨씬 쉬웠다. 매뉴얼과 기존 코드를 비교해 가며 잘 정리만 하면 되었다. 몇 가지 궁금한 것은 친절한 다른 선배에게 물어보면 되었다.


 '이렇게 열심히 만들 필요 없어. 세상에는 날고 기는 놈들이 많아서 그냥 잘 갖다 쓰면 돼'


  졸업한 선배가 랩실에 와선 그런 얘기를 자주 했다. 그 잘 만들어진 것을 써 보니 선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었는데 사수의 칭찬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신입사원은 뭘 해도 이쁨 받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또 할 일이 없어졌다. 다들 바쁘다 보니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까 설명해 준 코드를 응용해 보기로 했다.


 "선배님, 이것 좀 봐주실래요?"

 사수는 머리를 빼꼼 내밀고는 뭔가 하며 쳐다봤다.

 "이건 뭐야?"

 "보세요. 막대기가 4개 있는 건 4개의 시퀀스가 있는 장비라는 뜻이고요. 처음 막대기가 다 자라는 건 첫 번째 유닛이 일을 다 했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속도로 자라는 막대기가 순차적으로 움직이는 걸 만들어 봤어요."

  사수는 또 아까 보여준 토끼 눈을 하곤 칭찬한다. 이번엔 옆에 다른 선배들까지 부른다.

 "얘가 이런 걸 만들었어"

  내 눈엔 그저 아이들 재롱 보는 사람들의 모습 같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했던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가르치지 않아도 배우려고 했던 태도도 그랬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해보니 그런 신입 사원을 만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모르는 건 가르칠 수 있지만 태도는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팀장님. 그때 저 너무 감동받았는데요"

 "뭐?"


  중국에서 생일을 맞은 대리는 이미 만취 상태다. 택시 앞자리에 앉은 나에게 바짝 붙어서는 쉴 새 없이 떠든다. 원래 말이 많지 않은 녀석인데... 그냥 무슨 소리 하는가 싶어 그냥 놔뒀다. 전에 다니는 회사가 사정이 좋지 않았었는데 면접 때 좋은 인상을 줘서 뽑았다. 책임감이 강했고 예의도 발랐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생일이라는 핑계로 회식을 했다. 타국에서의 일은 힘드니까. 회식에는 고객사 직원도 함께 했다. 그런데 고객사에서 우리가 고생한다며 일체 결제해 버렸다. 만취한 대리가 2차를 간다길래 걱정되어 따라나섰다. 나는 원래 술을 잘 안 마시니까 멀쩡한 건 당연했다.


 "괜찮아?라고 물어봐 주셨잖아요?"

 "그게 왜?"

 "너 말고 너네 마누라.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아.. 그거.. 난 또 뭐라고.."


  해외 출장이 힘든 건 맞지만 본인 못지않게 가족들도 힘들다. 특히 독박 육아하는 집은 더욱 그렇다. 회사가 중국에 진출한 이후 해외 출장은 점점 늘었다. 몇몇 팀원은 일 년에 석 달 이상 한국에 있어 본 적이 없을 정도다. 한 번 나가면 몇 달을 지냈다. 중간중간 귀국을 하지만 그래도 쉬운 일이 아닌 건 사실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입출국이 어려워져 한 번 출장을 나가면 반년 이상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다.


  핸드폰 너머 들리는 울음소리는 마음을 후벼 판다. 가족이 힘든 건 자신이 힘든 것 이상으로 힘들다. 가정의 안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호통의 경영으로 유명한 일반 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은 직원의 이름을 모두 외웠단다. 그리고 연말에는 꼭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다. 귀하의 자식이 혹은 남편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었다는 감사의 편지다. 리더가 직원을 직접 칭찬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을 통해 가정에서의 위신을 살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큰 그리는 사람이라 본받고 싶었다.


  작은 배려는 되려 큰 감동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계획한 일에 대한 인정은 더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준다. 그렇게 또 에너지를 얻어 일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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