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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Aug 02. 2022

유치장

술에 취해 파출소에 잡혀간 이야기


순간, 눈이 화끈거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술이 이마 위에까지 차올라 만취한 상태에서도 눈 언저리를 부여잡고 신음하였다.


신촌 파출소 유치장. 지금은 지구대로 명칭이 바뀌었다. 파출소 순경은 술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저항도 못하는 젊은 대학생의 눈을 향해 최류 분무기를 쏘아 댔다.


1982년,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그날은 신촌 근처 동동주 술집에서 멀리서 올라온 고향 친구를 만나 나의 여자 친구를 보여주고, 서울구경을 시켜주는 흐뭇한 날이었다. 그러나 악몽의 시작은 알코올 도수를 가늠할 수 없는 동동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였다. 달고 진한 맛에 멈출 줄 모르고 넘기다가 거의 정신을 잃고 말았다.


술집을 나와 비틀거리며 신촌대로를 걷다가 전경의 불심검문에 걸렸다. 주민 등록증이 바뀌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막 안정을 찾아가는 군사정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수시로 공권력을 휘두를 때였다.


젊음의 거리, 신촌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대학생들의 일상을 보면서 고독한 군생활을 참아 내어야 했던 그 전경은 마침 풀어내어야 할 분노의 대상으로 술 취한 나를 제대로 선택한 것이었다.


대뜸 나의 바지춤 벨트 바클을 움켜 잡더니 파출소로 연행하는 것이었다. 바뀐 신분증도 없었고 '민중의 지팡이' 운운하며 흐느적거리는 젊은 놈, 하나 체포하는 은 일도 아닌 시절이었다. 영장은 물론 미란다 원칙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다.


내가 유치장에 갇히고 난 뒤, 오갈 데 없는 내 불쌍한 시골 친구와, 사귄 지 6개월도 안된 남자 친구의 사고에 놀란 내 안타까운 여자 친구와, 둘이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보았지만 도저히 그날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최류가스를 맞고 친구들의 행방도 모른 채 새벽 3시까지 신촌 파출소에 구금되어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다. 서대문 지역에서 검거된 잡범들을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집결시키는 시간이었다. 서대문 고가도로를 경찰차가 나를 태우고 돌아 나갈 때, 열린 차창으로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찬바람이 코끝을 찡하고 스치는 것이 추웠다기보다는 시원했다. 서서히 술이 깨기 시작하였다.


서대문 경찰서의 육중한 유치장 문이 '덜컹'하고 열렸다. 파출소의 그것보다는 5배쯤 더 크고 밖에서도 훤히 보이는 변기도 하나 있었다. 금단의 땅 같은 유치장 문을 들어서고 쇠창살이 '쾅'하고 닫힐 때 술이 다 깬 것 같았다. 아니 정신이 번쩍하고 들었다.


'큰 일났다!'


'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전과자가 되고 마는 것인가?'


유치장 한쪽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무릎에 묻었다. 벌써 7명 정도가 먼저 들어와 있었는데 한 사람은 벌써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계속하여 유치장 새 손님(?)이 들어올 때까지 잠은커녕, 닥쳐올 일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신이 맑아져만 갔다.


노상방뇨 한 놈, 무전취식 한 놈, 기물파손 한 놈, 나처럼 개긴 놈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그런데 정식 감옥이 아닌 그곳에서도 몇 시간 먼저 들어왔다고 영역싸움을 하였다. 서로 어러렁대며 입으로만 욕설을 주고받는 정도였지만 정말 무서웠다.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모대학의 조교수라는 사람은 유치장 문을 두 손으로 버티며 "죽어도 여기는 들어갈 수 없어요"라고 눈물로 호소하다가 엉덩이 차이며 들어오기도 하였다.


아침 6시경, 아침으로 라면이 나왔다. 피 같은 국민의 세금으로 800원이라는 돈을 써가며, 쓰레기 같은 너희들을 먹이는 것이 국가적 낭비라는 장황한 설명과 함께 내 앞에도 라면 한 그릇이 놓였다.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는 나에게 그 노상방뇨는 힐끔거리며 말했다.


"오늘 일정이 길어요. 먹어 두는 것이 좋을 건데..."


그러나 도저히 라면을 삼킬 수가 없어 '먹겠냐?'라고 했더니 그는 얼른 두 그릇을 해치웠다. 빈 그릇을 내고 당직 경찰이 지난밤, 붙들려온 잡범들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줄을 세워 '앞으로 나란히'한 상태로 앞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앉아!. 일어 서!"


경찰의 구령에 맞춰 군말없이 따랐다. 욕을 주고받으며 하룻밤을 같이 한 20명의 잡범들은 숙달된 훈련병처럼 말을 잘 들었다. 그렇게 기도훈련으로 각이 잡힌 인간쓰레기들은 재판을 받기 위해 즉결 재판소를 향하는 버스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남 기운!"


그 와중에 내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었다.


"뒤로 열외!"


그때부터 왠지 서광의 빛이 보이는 듯하였다. 아침에 출근한 서대문 경찰서의 가장 높은 계급인 경찰서장실에 호출되었다. 50대 초반의 선한 눈매를 가진 경찰서장이었다.


"너, 진짜 의과대학생이 맞아?"


소장이 묻자 급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심정으로 크게 대답하였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왜 학생증에 등록금을 낸 도장이 없어?"


"아! 예, 제가 6년 전액 장학생이라 도장을 찍지 않습니다!"


서장의 표정이 믿는 듯, 믿지 않는 듯 묘하였다. 그런 중에도 경찰서장의 명패를 힐끗 보았다. '남 ○○'이라는 이름의 의령 남 씨 종친이 아닌가!


'아! 이런 영광이...!'


우리 집안에도 이렇게 출세한 종친이 있다니!

아! 희미한 희망의 불빛이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다시 이런 곳에 잡혀 올 거야?"


"아닙니다! 절대 안 오겠습니다!"


처절한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외마디 비명처럼 외쳤다.


"훈방이야!"


드디어 해방의 광명이 찾아온 것이었다.

순간, 이 은혜를 갚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함 하나만 주세요.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허, 허! 우리는 명함 같은 것 안 갖고 다녀!"


비리라고는 모르는 듯한 청렴 경찰 서장님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90도로 감사의 인사를 하고 그 경찰서장을 우러러보았다. 정말 멋지고 잘생긴 나의 구세주에게 다시 한번 절하고 경찰서 정문을 빠져나왔다.


정문 앞 계단에서 마주하는 아침 햇살과 자유의 공기가 얼마나 달고 감미로운지 그때 처음 알았다.


자취방으로 향하는 시내버스에서 아침 10시 뉴스가 나왔다. 지난밤, 전국에서 실시된 불심검문에서 잡혀와 훈방 조치된 총 4300명 중에 한 명이 그 버스에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내 여친은 벌금으로 내어야 할 돈을 빌린 후, 즉결 재판소에서 나를 찾아 헤매었고, 내 불쌍한 고향 친구는 천신만고 끝에 나의 자취방에 도착하여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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