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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Aug 03. 2022

도박 중독

공중 보건의 시절 도박에 중독된 이야기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단 칠정'이라는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럼 사단과 칠정은 무엇인가?


우선 '이'에 해당하는 형이상학적인 '사단'은 인, 의, 예, 지로 구성되어 있고 '기'에 해당하는 '칠정'은 희, 노, 애, 구, 애, 오, 욕으로 형이하학적인 인간의 7가지 기본 감정을 설명한다. 이것이 이기론의 기초이다.


이 모든 인간의 사고와 감정들은 우리의 머리, 두개골 속에 있는 약 1400그램의 뇌로부터 작동된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바이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으로 변화되는 희열, 분노, 쾌락, 번뇌 따위의 감정들이 뇌 세포를 연결해 주는 시냅스란 곳에서 신경전달 호르몬의 변화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세로토닌이 많이 분비되면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것이며 도파민이 과도하게 흐르면 짜릿한 흥분감으로 진정한 스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파킨슨 병이나 우울증 치료에 신경전달 물질을 제어함으로써 여러 가지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단계까지 현대의학이 발전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의 조각 하나조차도 뇌에서 분비된 신경전달 호르몬의 증감에 따라 변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독에 관련된 여러 신경전달 물질 중에 가장 중요한 호르몬이 도파민이다. 담배, 알코올, 마약 등은 뇌 속에서 도파민 생산을 자극시켜서 인간에게 행복감과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물질들이다. 계속해서 섭취하게 되면 다량의 도파민과 함께 행복 호르몬이 뇌의 보상 시스템을 만족시켜 주다가 점점 내성에 의해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고 그 물질을 끊거나 줄이면 극도로 기분이 나빠지며 신체가 그것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 중독에 대한 설명이다.




나는 한때 도박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남자가 돈이 많고 시간이 많으면 노름쟁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나 지성적으로 뛰어 난 사람이라 할 지라도 환경에 지배당하고 유혹에 흔들리는 약한 한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1988년, 정형외과 레지던트 시험에 낙방한 나는 군 복무를 위해 3개월간의 군의관 훈련을 받은 후 운 좋게도 공중 보건의로서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한 면 소재지의 보건지소에 발령을 받았다.


이때 나는 돈은 없었지만 시간은 넘쳐날 정도로 많았다. 복무를 대신하여 훈련기간을 빼고도 36개월을 보건지소에서 근무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국방부 시계가 다 돌아가야 제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루에 환자가 5명도 안 되는 근무지라 조간신문의 사설까지도 다 읽고 시간을 죽여도 마냥 무료한 시절이었다. 읍내와 가까운 보건소라서 환자가 올리도 없었지만 경험 없고 어린 신출내기 의사를 믿고 진료를 받을 사람들이 없어서 항상 시간이 남아돌았다.


처음에는 근무 끝날 때쯤, 주위 다른 면 보건지소장들과 어울려 점당 백 원짜리 고스톱을 즐겼다. 다른 지역의 지소장들도 출신 학교는 다르지만 비슷한 나이, 같은 직업, 같은 처지이므로 시간이 될 때마다 모여 희희낙락하였다. 점점 모이는 횟수가 늘어나고 근무도 오전으로만 마감하고 오후에 집결하는 일이 많아졌다.


과목도 고스톱에서, 빠르고 더 큰 판을 벌릴 수 있는 포커로 바뀌어 갔다. 최종적으로 포커게임의 일종인 '하이 로우'라는 게임으로 낙찰되었다. 이것은 게임을 이길 수 있는 높은 족보와 낮은 족보가 있는데 최종 베팅하여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판돈을 반씩 가져가는 게임이다. 한 사람이 높은 것과 낮은 것을 동시에 쥘 수 있는데 이때는 흔들어서 독식을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보통 3만 원에서 10여만 원을 잃기도 하고 따기도 하였다. 한 번은 20여만 원을 따서 신혼살림에 없었던 전자레인지를 사서 집사람을 기쁘게 한 적도 있다. 월급이 육군 중위 월급으로 약 20만 원을 받을 때에 그 규모는 적지 않은 판돈이었다.


보건소에서 판을 벌리다 급기야 여관으로 옮겨 밤을 새우고 아침에 신혼집으로 들어갈 때도 있었다. 퇴근하던 면장님이 보건소 숙소에 들러 젊은 의사들이 패를 돌리는 도박의 현장을 마주하고 혀를 끌끌 차면서 말려도 한번 시작된 도박은 끝날 줄 몰랐다.


밤을 새우고 들어오는 남편이 한심해 어느 날 신혼의 아내는 집으로 와서 포커를 하라고 여관대신 집을 하루 허락해 주었다. 저녁을 먹이고 간식까지 먹이고 적당한 시간에 파하고 각자 돌아가기를 기다렸으나 도박의 성질을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내는 기다리다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을 새우고 계속 포커를 치고 있는 신랑과 그 친구들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그제야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포커 좀비들은 그 후 다시는 집에 올 수 없었다.


중독의 위험을 알아차리고 한 두 사람은 포커의 모임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대부분은 군 복무 3년이 끝나갈 때까지도 포커는 계속되었다. 아무리 그만하고 싶어도 전날 잃은 돈을 복구해야 하고 포커에서 돈을 땄을 때의 우월감과 행복감은 도덕적 절제의 힘에 비하여 악마적으로 달콤하였다. 오후가 되면 포커 카드를 잡고 싶어서 손이 떨릴 정도였다. "아! 이런 것이 도박 중독이구나"라고 깨달아도 자력으로 도박을 끊기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의사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의가 되는 과업이었다. 1차 낙방한 정형외과 레지던트 시험을 제대 후 다시 보아야 하는 것이었다. 밤낮으로 일해야 하는 레지던트 수련 중에는 포커를 할 수 없기에 불안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바쁜 생활환경에 몸을 집어넣어 강제로 도박을 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드디어 제대를 하고 경희대학병원 정형외과에 합격하여 레지던트 1년 차로 근무를 시작하였다. 군대보다도 더 엄격한 규율과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영혼의 힘까지 빨아올려야 하는 강 노동에 잡생각은 사라졌고 서서히 도박의 유혹은 멀어져 갔다. '생물은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명제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환경을 바꿔주지 않고 자력으로 중독에서 탈출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도박의 위험성에 대하여 뼈저리게 경험을 하였고 스스로 중독성 경향이 있는 나의 성격을 알기에 그 근처를 가지 않으려 한다. 중독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고 호기심이나 재미로 한 도박이 옷감에 물이 들듯 서서히 다가오므로 초기에 위험을 알아차리면 중독되지 않는다.


카지노를 멀리하고 친구와 가더라도 밥만 먹고 구경만 하고 온다. 도박하는 친구와는 멀리하고 대신 '좋은 중독'이라고 하는 스포츠에 매진한다. 분별없는 아이들에게도 끊임없이 도박의 무서움을 강조하면서 인생을 한방에 나락으로 추락시킬 수 있는 것이 '노름'이라서 절대 피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 다시 포커 카드를 잡아보면 짜릿하고 흐뭇하다. 돈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도파민의 괴력 앞에서는 나의 의지는 희미하기만 하다.


중독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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