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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Aug 05. 2022

담배 예찬

20세에 입학한 담배, 34세에 졸업.


볍지만, 그리고 무거운 담배 한 갑을 손에 쥐고 검지를 튕겨 '툭'하고 나는 소리는 경쾌하다. 순간 20개비의 담배들은 열과 오를 맞추고 차렷 자세로 도열한다.  전사들의 열병을 받은 장군은 병정들을 전장으로 내 보내기 위해 금박 띠를 돌려 뚜껑을 연다.


고개를 까딱이는 러시아 병정처럼 비스듬히 열린 뚜껑으로 퍼지는 향긋한 향기는 담배 필터의 동그라미만큼 정갈하다. 연초를 둘러싸고 있는 순백의 필터는 여인의 피부처럼 아름답다.


콧구멍과 윗입술 사이를 지나는 담배의 향기는 갓 추수한 밀의 향기만큼 변색되지 아니하였고 갈색 연초를 싸고 있는 외피는 은은한 줄무늬로 나를 반긴다. 내밀하게 충만한 한 개비의 담배는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첫 모금의 연기 색깔은 파랗고 점점 회색으로 변색되는 향기는 그 생기를 잃어간다. 호흡으로 다시 배출된 연기는 퇴색된 역사처럼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담배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7세 무렵이었다. 동네 형들의 꼬임에 떨리는 손으로 파란 연기가 흔들리는 담배를 잡았다.


" 한번 쭈욱 빨아봐! 기분이 끝내주게 좋아질 거야 "


믿을 수는 없었지만 이미 발동한 호기심이 나를 멈추지 못하게 하였다. 한 모금을 쭉 빨고 기도를 통하여 과감하게 삼키었다. 그 순간, 나는 죽었다. 죽을 뻔하였다.


담배 연기 한 번도 접하지 않은 나의 기도 점막은 그 연기의 충격에 경기를 일으켰고 허파는 경련을 일으키며 숨구멍을 막아버렸다. '캑캑'거리며 나뒹구는 나를 즐기는 악동들의 웃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담배에 대한 기억은 20세, 아니 만 19세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미성년자에서 성인으로 해방한다고 하면 으레 그날이라고 생각된다. 호기롭게 졸업식 당일 날 '어른 흉내'를 내었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멀지 않은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특별한 제제 없이 입장을 시켜주는 것이 신기했고 친구가 권하는 담배를 하나 물었다.


그 이름 '청자'였다


트라우마처럼 기억된 나의 첫 경험으로 연기를 흡입하기에 주저하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의 허파는 부드럽게 받아주었고 기침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담배 인생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중독되는 듯한 증상은 없었다. 피워도 그만 안 피워도 그만. 6개월 정도를 넘어서니 슬슬 담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가니 아침 기상과 함께 담배를 물고 호주머니에 담배가 없으면 불안하였다. 2년 이상 피우면 이제 담배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술 취해 피워 무는 담배는 어릴 적 생명줄이었던 어머니의 젖꼭지만큼 행복을 가져다주었고 자정의 깊은 밤, 산통으로 고생하던 아내가 응급 수술을 들어간 그 수술실 앞에서 물었던 그 담배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쯤 되면 재떨이에 쌓인 담배꽁초를 다시, 그리고 또다시 뒤지게 된다.


그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고 14년 만에 겨우 탈출하였다. 나이 34세였다. 정형외과 레지던트 2년차 시절 나는 폐결핵에 감염되었다. 혹독한 업무 환경과 수면 부족, 영양 불균형의 이유로 환자를 통하여 감염되었던 것 같다. 다행히 우측 폐, 상단의 초기 결핵이었다. 그로부터 1년간의 약 복용과 2 주간의 휴식 및 격리 조치가 나에게 떨어졌다.


내과병동에 입원하여 동료와 가족으로부터 격리되었다. 약 복용 후 2주면 남에게 전염시키지 않으므로 그 기간에 입원되었던 것이었다.


입원 중에도 흡연은 계속되었다. 하루는 문으로 입을 내고 담배를 태우고 있을 때 내과 간호사에게 들켰다.


" 아니! 선생님이 담배를 하시면 안 되죠! "


그 간호사의 눈빛에 경멸이 스쳐갔다. 부끄러웠다.


그로부터 담배 중독과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박하사탕의 흰색이 무서워지도록 호주머니에 항상 자리했다. 3주간의 담배 금지를 지나니 체적 금단 증상은 끝이 나는 듯하였다. 그러나 정신적 의존성은 그 후로도 오래오래 지속되었다. 담배를 끊은 지 근 30년이 다된 지금도 누가 담배를 피우면 그 연기의 향기가 좋다.


담배 중독도 평생을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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