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조기 축구회만큼 대중화되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골프장들을 둘러보면 80세 가까이 되어 보이는 부부가 나란히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 먹어 갈수록 의지할 친구는 배우자밖에 없는 것 같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키우며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치열하게 삶을 살아갈 때에는 ' 당연히 부부이기 때문에 가족사랑이 유지되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서로 배우자에게 정성을 다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장성한 후, 독립하여 하나씩, 둘씩 떠나고 나면 부부만 덩그러니 남아 노후에 고독이라는 괴물과 싸워야 한다.
'빈 둥지 증후군'이다.
이때에 취미라도 하나 공유하는 것이 없다면 서로 것 돌게 되고, 따로 떨어져 시간을 보내다 보면 오해도 생기고 미움이 싹터 황혼이혼의 빌미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노후준비로 재정적 설계에만 매진할 것이 아니라 그 돈을 가지고 같이 놀거리를 미리 연습하여야 한다.
등산, 여행 등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보다 배드민턴, 테니스, 골프 등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약간 어려운 놀거리가 오히려 좋다. 서로 경쟁도 되고 놀이가 어려울수록 성취감이 높은 법이다.
여기에서 골프는 노후에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놀거리라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것이다.
체력이 노쇠해질 때까지도 골프채를 들 수가 있고 안전하면서도 꾸준한 운동의 효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와이프를 골프장으로 데려가면 아내가 당연히 행복해하는 줄 안다. 이는 결코 맞지 않는 착각이다. 처음에는 푸른 잔디와 탁 트인 전망에 환호를 내기는 하지만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볼이 맞지 않아 짜증을 내고 스트레스로 침울해하기 까지 한다.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며 상대방과 비교되는 굴욕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프를 진정으로 즐기려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여야 하는 것이다. 남편이 스승이 되어 골프를 입문한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잘한다'라는 칭찬뿐이다.
"당신은 골프에 천재적인 자질을 타고났어! 골프 프로 선수가 되어야 했어!"
라고 과감하게 칭찬해 주어야 한다. 아무리 심한 칭찬이라도 남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법은 없는 것이다.
조금 먼저 터득한 알량한 골프 이론으로 와이프의 스윙을 지적하며 미스 삿의 원인을 분석해 주다 보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기를 꺾는 결과가 되어 골프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는 수가 있다. 누구든지 말로는 못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마음을 먹어도 몸이 따라 가려면 세월이 필요하고 무한반복의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된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떤 부부가 골프 라운드를 하고 있었다. 자꾸 미스 삿을 내는 아내에게 처음에는 다정하게 코치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헤드업 하지 마세요"
그런다고 금방 골프가 잘 될까? 계속 볼을 못 맞추는 아내에게,
" 머리를 들지 말라니까..."
그래도 볼이 또르르 앞으로 구르니까 불같이 화가 난 남편이,
"대가리 박아!"
라고 일갈했다지 않은가.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골프백을 내 팽겨 치고 집으로 갔다는...
100타의 벽을 깨고 '보기 플레이어'의 길로 들어설 때는 골프의 흥미가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하고 '고통의 터널'을 벗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골프의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79타 이하의 싱글 골퍼는 아마추어로서는 골프의 완성이다 할만하다.보기 플레이어를 아우르는 정도의 골퍼라면 남보기 부끄러운 정도는 아니다.
골프 라운드 중 약간의 긴장감은 있어야 재미있다. 그래서 부부 라운드에서도 간단한 승부내기를 하는 것도 좋다. 주로 홀 매치 형식으로 하는 것이 좋은데, 핸디를 많이 주어 아내가 이길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것이 좋다. 18홀 모든 홀에서 1타를 접어주고 파 5에서는 2타를 접어 주고 홀 매치를 해보자. 아내의 실력 향상 정도에 따라 핸디를 9홀로 줄이고 점점 전반 2홀, 후반 2홀 핸디를 주다가 결국 맞상대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아내가 잘 치면 흐뭇하더니 핸디 없이 맞상대에서도 질 경우에는 흐뭇하다기보다는 씁쓸해지는 것이 골프이다. 아내에게 골프를 지면 대견하면서도 기분이 나쁜 것이 골프이다.
두 부부가 같이 라운드 할 때는 부부끼리 승부를 내는 것은 위험하다. 무슨 뒤탈이 생길지도 모르니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대신에 남성 2명, 여성 2명으로 팀을 만들든가 실력을 봐 가면서 서로 교차하여 팀을 만드는 것이 좋다.
이때는 둘 중 잘 친 스코어로 승부를 내는 베스트 스코어를 권한다. 베스트 스코어 홀 매치는 2대 2 승부를 내면서 둘 중 잘 친 스코어 하나만을 선택하여 홀마다 승부를 내어 홀을 많이 가져가는 쪽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1홀을 이기면 1up, 비기는 상황이면 A/S(All square), 2홀을 지는 상황이면 2 down 등으로 기록하다가 예를 들어 2홀을 남겨 놓고 3up이면 경기가 끝난다.비기는 수도 있으므로 그때가 가장 흥미진진한 게임이 될 수 있다.
세상에 누구라도 져서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특히 골프에서는 조그만 내기가 걸려 있어도 지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부부 라운드 후 간단한 내기를 하는 것도 좋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하기라든지 오늘 저녁 요리 또는 설거지 같은 것을 걸어 놓으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의 승부가 되는 것이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거나 샷이 안 되는 날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짜증이 나는 때가 있다. 좋은 기분으로 필드에 나와 부부끼리 신경전을 벌이거나 심지어 싸우는 경우도 보았다.
이때 흥분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끝이 뾰족한 티를 하나 쥐고 엄지 안쪽으로 강한 힘으로 꾹 누르면 침을 맞듯이 통증이 느껴진다. 감정 컨트롤에 실패한 자신에게 벌을 가하는 것이다. 또, 통증으로 인해 분비되는 뇌 호르몬인 엔도르핀 효과로 조금 진정될 수가 있는 것이다.
골프가 심리에 매우 영향을 받는 스포츠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범했다던지 오비를 내고 나면 다음 홀도 망치기 일쑤다.모두가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의 조화에 의해 우리의 심리가 흔들리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실수를 하거나 결과가 나쁠 때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에피네프린, 노르 에피네프린이 혈압을 올리고, ACTH,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기분을 더럽게 하고 면역을 떨어 뜨리며, 인슐린, 성장 호르몬들까지도 같이 분비되어 본능적인 위험에 대비하게 되어 있다. 이런 호르몬들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고 간에서 분해, 소멸되려면 최소 15분 이상이 걸린다. 그러므로 다음 홀을 망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그 영향으로 더욱 스코어가 나빠져 슬럼프에 빠지면 정말 골프를 그만하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이다. 전홀에서 꼴찌 한 선수를 다음 홀 티샷을 마지막에 하도록 하는 순서가 그동안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쁜 호르몬을 빨리 소화시켜라는 배려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전홀에서 버디를 한 선수가 다음 홀 티샷에서 장쾌한 오비를 내는 수가 있다. 이를 두고 '버디값'이라 한다. 버디의 짜릿한 순간, 분비된 여러 호르몬에 의해 심리적으로 흔들려 다음 홀에서 미스 삿을 범한다고 생각된다.
여러모로 골프는 잔잔한 호수와 같은 평정심을 가지고 부처의 마음으로 임하여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