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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Jul 30. 2022

이발소 사건

이발하다 말고 머리 반쪽만 깎인 이야기


참, 이 기억이 떠 오르면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부끄럽고 웃음이 절로 난다.

이발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머리카락은 하루에 평균 1mm씩 자라난다고 한다. 털북숭이 영장류였던 우리 조상이 무슨 이유였던지 머리나 겨드랑이등의 털만 남기고 대부분 사라지고 하마처럼 맨살만 두르고 있다. 덕분에 자라나는 머리털을 정돈하기 위해 1,2개월에 한 번씩 이발소나 미장원에 들러야 하는 것 같다.

그날도 4월의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기분 좋게 이발소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 이발소가 진화하여 남성 커트 전문인 프랜차이즈 미장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기다리지 않고 속전속결로 해치우는 속도전이 마음에 들었고 6천 원이란 저렴한 가격에다 9번을 찍으면 10번째는 공짜로 해결해주는 멋진 이발소였다.

미안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발에 관련된 어릴 적 기억을 하나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면 고맙겠다.

주로 벼농사로 밥을 지어먹고사는 가난한 농촌마을에 그래도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현대식 마을회관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 잡화점인 마을 점방이 있고 회관 귀퉁이에 이발의자 2개가 놓인 이발소가 하나 있었다.

이발비는 얼마나 하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출타하는 사내들의 멋 내기 장소로도 이용되었고 어머니가 가위로 깎던 시절에서 두어 달에 한 번씩 솜씨 좋은 이발사에게 아이들을 보내어 머리를 정돈시키었다.

이발소 문을 오른쪽으로 밀어 드르륵하고 들어서면 코로 확 풍겨오는 싸구려 스킨로션 냄새가 그리도 좋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흰 가운을 입은 30대의 이발사가 깨끗하게 보였고 짧게 자른 머리에 번들거리는 얼굴이 도회적으로 보여 가끔은 찬란하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이발소 가는 날은 항상 미리 비누로 머리를 감고 이발을 하러 갔다. 아마 8세 정도의 기억으로 생각된다. 그날도 집에서 머리를 감은 후 이발소의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그 이발사가 두 손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면서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 햐! 너는 올 때마다 항상 머리를 감고 온단 말이야! "

그의 친절일 수도 있겠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바라면서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칭찬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칭찬이 그렇게 위대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는 그다음 날 잊어버렸겠지만 말이다.

이발소에 대해 대체적으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겠다.

이발소에 앉으면 거의 대부분 이발사가 이렇게 묻는 것 같다.

"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앞머리를 어떻게, 옆머리를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모양이다. 나이가 먹어 갈수록 외모에 관심이 덜 가는지 언제부턴가 나의 대답은 항상 이런 것이었다.

" 알아서 해 주세요 "

그러면 알아서 턱턱 잘라주고 거의 대부분 결과물에 대해서는 만족하는 편이다.

그 봄날도 이발의자에 앉아 가운을 두르고 하얀 얼굴의 20대 남자 미용사가 어떻게 잘라 드릴지 물어 왔다.

그날따라 좀 다르게 대답하고 싶었다.

" 미디엄으로 해 주세요. "

그것이 큰 사단을 불러왔다. 그날따라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인지 그 젊은 청년은 그 가벼운 농담을 잘 삼키지 못한 것이었다. 미용으로 밥 먹고 산다고 무시하면서 스테이크를 미디엄을 구워달라는 식의 대우를 받았다고 오해했는지 손까지 벌벌 떨면서 분개하기 시작했다.

" 손님이 영어를 쓰시면 안 되죠! "

앞뒤가 조금 맞지 않은 논조로 계속 영어를 쓰면 안 된다고 여러 번 대어 들었다. 본말은 자기가 이런 일을 한다고 무시하느냐고 대드는 것이었다. 절대로 그런 뜻은 아니었고 그냥 알아서 해달라고 한 것이었는데...

도저히 그냥 넘어갈 것 같지도 았았고 머리의 오른쪽 반이 깎여 나갈 때까지도 계속 영어 같지도 않은 영어를 썼다고 따지는 것이었다.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발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 아니, 너무 하잖아요! 농담한 걸 가지고... "

그러더니 이 젊은 이발사는 가위를 내 팽개치고 왼쪽 머리를 남겨둔 채 담배를 물고 이발소를 나가 버렸다.

황당하였다.

다른 이발사에게 반이 남은 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떡하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기만 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깎다만 머리로 그 이발소를 나와 4월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그리 멀지 않은 옆 이발소를 찾아갔다.

이유를 물으면 와이프가 이발하다 마음에 안 들어 다시 찾아왔다고 변명할 참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새로운 이발사는 이 사태에 대해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나머지 반쪽 머리를 깔끔하게 잘라 주었다.

두 번만 더 찍으면 공짜로 한번 깎을 수 있는 쿠폰 딱지도 포기하고 그 이발소도 끝이었지만 나의 뜻 없는 말 한마디가 남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교훈을 아프게, 부끄럽게 얻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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