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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Aug 30. 2022

부부싸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닙니다.


칼로 물을 벤다고 했던가!


부부 사이에 흐르는 물은 아무리 칼질을 하여도 끊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생채기도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군가에는  심장이 끊어질 정도로 깊은 상처가 남을 수 있다.


바로 10대 초반의, 여린 소년기에 들어선 내가 그랬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허구한 날 싸우기만 하였다. 아예 부부싸움을 하기로 작정하고 결혼을 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농사는 수공으로 지어내는 시절이라 온 식구가 달려들어야 했다.  농번기에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그 바쁜 시절에 아버지는 읍내로 나가 장년의 열기를 술로 풀었으니 어머니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저녁 9시쯤, 아버지가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대문을 열고 마당을 들어서 마루에 앉기도 전에 어머니의 악다구니가 시작된다. 그때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처절한 부부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문짝이 부서지기도 하고 요강이 박살 나기도 하였다. 농사일을 돕느라 노곤한 하루를 보내고 작은방에서 도토리처럼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던 우리 형제들은 커져가는 부부의 목청에 점점 잠은 달아나고, 급기야는 방에서 쫓겨 나와 보릿짚 덤불 속에 바람을 피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어야 했다.


가끔 이웃에 사는 고모나 친척 할머니가 듣다 못해 기웃거리며 싸움을 말리려 왔지만 서슬 퍼런 두 사람의 오기에 밀려 물러나고 말았다. 끝까지 말려주고 수습해주기를 바랐는데 이웃 일에 깊이 참견하지 않으려는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한날은 크게 싸웠다.


아버지는 도끼를 들고 장독대로 갔다.


"이거 깨 버리고 니도 죽고 나도 죽자!"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의 간장을 공급하던 내 키보다 더 큰 장독 앞에서 아버지는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깨소! 마 깨소! 깨고 다 같이 죽고 맙시더"


어머니 얼굴에서 시퍼런 독기가 퍼져 올랐다. 그때 고등학교를 다니던 큰형이 마루에 나뒹굴었다.


혀를 깨문 것이었다. 이런 꼴을 다시 못 보게 죽겠다는 것이었다. 진짜로 형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그날은 그렇게 해서 싸움이 끝났다. 어른들에게는 그냥 싸움일지 모르지만 담대하지 못한 어린이에게는 공포였다.

세상이 끝나는 것 같기도 하고 우주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새벽 3시쯤 제풀에 지친 불쌍한 부부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밤 고양이처럼 우리는 다시 작은 방으로 스며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이불을 덮어쓰고 끙끙 앓는 소리를 하였고, 지난밤의 전쟁에 한 편의 부끄러움과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아버지가 부엌에서 직접 밥을 하였고, 우리는 부은 눈으로 말없이 밥을 먹어야 했다.


부부싸움 , 서로에게 난 상처는 그렇게 물처럼 아물 수는 있겠지만 자식들에게 난 상처는 누가 보듬어 주는가!

그렇게 나의 소년기는 부모의 끊임없는 부부싸움으로 영혼이 병들어 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부부의 불화로 인해 수많은 밤을 불안과 공포 속에 떨고 있을 어린 영혼들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존 가트만(John Mordecai Gottman, 1942. 4. 26  ~ ) 박사로부터 제발 좀 배우고 공부하자.


미국 워싱턴 주립대의 명예 심리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부인인 쥴리 가트만과 함께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부부심리 치료사 10인에 오를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부부가 이혼하는 이유는 폭력, 외도, 도박 등의 구체적인 이유는 소수이고 대부분, 부부의 대화방법이 잘못되어 불화와 이혼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3,500쌍의 부부를 30년 이상 관찰하여 펴낸 논문이 유명하다. 심지어 15분의 부부 대화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내용을 분석하면 3년 내에 이혼할 확률을 % 단위로 도출할 수도 있다고 한다.


가트만 박사는 불화를 거처 이혼으로 이르는 단계를 4가지 과정으로 제시한다.


먼저 비난, Criticism이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끝마다 비아냥거리고 도무지 칭찬할 줄 모른다면 벌써부터 그 부부는 위험하다. 말속에 가시처럼 비난을 숨기고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가족을 힘들게 한다. 심지어 비난이 생활화되면 스스로 비난을 하는지도 모르는 수가 있다. 비난을 멈추어야 한다.


두 번째로 경멸, Contempt이다. 비난을 넘어 상대의 가슴에 비수처럼 말을 꽂으면 평생 마음에 각인되어 잊을 수가 없다.

"가방 끈 짧은 주제에 니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또는 "너네 집안이 원래 천민 출신이라 수준이 떨어져!"라고 한다면 위험 수위를 넘은 것이다. 절대 경멸의 단어는 입에 담지 않아야 한다.


세 번째는 방어 공격, Defensiveness이다. 분개하여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마디, "너는 얼마나 잘났니?", "꼴값 떨고 있네!"라고 대응한다면 부부싸움은 더욱더 고조되기만 한다. 설령 하고 싶은 말이 많더라도 화가 식고 난 다음, 템포를 늦추어가는 지혜를 가지자.


네 번째는 방화벽, Fire Wall이다. 더 이상 대화는 불가능하고  한심하다 못해 입을 닫아 버린다. 상대가 고통을 겪던 말든 관심을 끊어버리고 대화를 차단하는 단계이다. 이 정도까지 악화되면 무늬만 부부이지 남보다도 더 못한 부부 사이가 된다. 외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려운 단계이다. 싸우더라도 대화가 단절되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 끝까지 소통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이러한 4가지 단계를 주방이나 안방에 크게 붙여놓고 매일매일 각오를 다져야 한다.


왜! 아이들을 위해서!


60대에 들어서야 아버지와 어머니의 전투는 서서히 잦아들었고 우리들은 다음 세대의 가정을 가지고 또 다음 세대를 이어 갈 자식들을 낳았다.


반면교사라 했던가...


자식들 앞에서는 부부싸움을 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고 미래의 내 아내의 조건 1순위는 언쟁하지 않을 수 있는 성격의 배우자였다. 다행히 그 소원이 이루어져 가정의 평화를 이루었고 내 아이들에게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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