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유리창을 깨고 집어넣은 손으로 바케트 빵을 잡는 장발장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점원이 근무하고 있는 시간에 배고픈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는 그는 반사회적인 인격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또, 5년형의 금고형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교도소 내의 반발과 탈옥 시도에 의해 19년형으로 형기가 늘어난 것에서도 그의 성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숨기고 사업가로 성공하고 심지어 시장까지 출마하여 당선되는 대범함이 그를 반증한다.
장발장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넘어 소시오 패스일 가능성이 높다.
반 사회적인 인격장애는 리더십이 강하고 성취욕구가 높아 때로는 성공을 하기도 하지만 잘못 판단하여 일을 망치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나에게도 반사회적인 인격이 숨어있다고 생각된다. 주관적이긴 하지만 살아오면서 느낀 바로는 자신이 대범하고 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기존 관념에 대하여 별 소득도 없는 반기를 들어 친교를 망가뜨리기도 하고 사소한 도덕적 규범을 쉽게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도 장발장처럼 죄를 고백하고자 한다. 장발장 대신 재판을 받던 샹 마튜라는 사람을 구하는 것만큼은 가치는 없지만 그래도 45년 전의 범죄를 자백하는 바이다.
1977년, 중학교 3학년 시절에 학교의 책상을 도둑질하였다. 시간을 돌려 그때의 밤으로 돌아가 본다.
4월의 그믐밤, 칠흑 같은 어둠에 별빛만이 희미하게 사위를 비추고 있었다. 미리 답사하였던 논두렁을 지나 측백나무 울타리 작은 틈을 향해 발자국을 죽이며 여동생과 함께 나아갔다.
내 나이 16세에 절도라는 범죄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공공시설인 학교의 책상을 훔치는 공공기물 절도를 동생과 작당하여, 완전범죄를 꿈꾸며 1개월간 준비하였다.
중학교 뒤의 어느 시골집 사랑방에 월세 4천 원을 주고 여동생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개 다리 밥상에 책을 펼쳐 놓고 공부하기엔 너무 좁고 다리가 저려 오래 쭈그려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언젠가부터 햇빛이 드는 창가에 책상을 두고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꿈꾸곤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호사였다. 집에 책상을 두고 공부하는 친구가 부러웠지만 자취방에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턱을 괴고 몽상에 빠져드는 일은 생각만 해도 근사한 일이었다.
마침 60명의 반 아이 중 하나가 전학을 가면서 여분의 책상과 의자가 생기면서 나의 겁 없는 도전이 시작되었다.
측백나무 사이 ‘개 구멍’으로 불렸던 비공식적 후문을 지나, 백일홍 화단을 돌아, 3학년 1반 교실의 복도 창가에 이르렀다.
3학년 1반 반장이었던 나는, 토요일 청소당번과 함께 정리를 끝내고 하교시킨 뒤, 복도와 교실 창문 하나씩을 열어 두었다. 가장 튼튼하고 잘생긴 책상과 의자를 골라 복도 가까운 곳으로 옮겨 놓은 것도 잊지 않았다.
동생에게 창 밖에서 대기하도록 명하고 과감하게 창문을 넘어 칠흑의 어둠을 향해 나아갔다.
두 번째 창문을 넘는 순간 이상한 소리에 별안간 가슴이 써늘하게 내려앉았다.
'부스럭, 부스럭'
손을 더듬어 뒷 열에 찍어둔 책상을 향해 걸어갈 때 그 숨소리의 강도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하~악, 하~악'
공포의 전율이 등 짝을 후려 때렸지만 거기서 후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나 망설이고 망설였던 오늘이었던가! 준비해둔 책상에 이르러 의자를 책상에 얹어 번쩍 들고 나올 때까지도 그 숨소리는 거칠게 계속되었다.
‘사람일까?’
‘귀신일까?’
침착하게 책상을 들고 교실을 나와 복도 밖의 동생과 나란히 오던 길을 되짚어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누구였을까?’
이 야심한 봄날의 밤에 3학년 1반 교실 뒤 마룻바닥에서 정사를 벌였던 이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거의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마음 한 구석 집히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조숙한 아이로 남녀공학의 시골 중학교에 벌써 많은 소문을 내고 있었던 친구였다. 그는 키도 크고 짙은 쌍꺼풀의 검은 눈에 유머감각이 뛰어난 이국적인 사람이었다.
수개월 후 내 자취방을 다녀간 친구들로부터 이미 나의 범죄행각은 발각되고 말았다. 그 친구들 속에 문제의 그가 다녀갔기 때문이었다.
‘지난봄에 네가 했던 짓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누가 먼저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는 못하였다.